[사설]국보법-노동당 규약, 따로 볼 수 없다

  • 입력 2004년 9월 6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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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4일 민족화해협의회 명의로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요구해 보안법 존폐 논란은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북한의 요구는 물론 터무니없다. 한마디로 “남한에서도 공산당 활동을 허용하라”는 것인데 대남(對南) 적화통일 노선이 명시된 노동당 규약은 그대로 둔 채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내정간섭일 뿐 아니라 논란에 편승해 남남(南南) 갈등을 부채질하려는 저의까지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정동영 통일부 장관까지 “폐지가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폐지가 시대의 흐름이라면 폐지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폐지 여부가 아니라 ‘보안법과 노동당 규약과의 연계’다. 대다수 국민은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보안법에 변화가 있으려면 대척점에 있는 북의 노동당 규약에도 같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믿어 왔다. 그런 연계를 이런 식으로 포기해도 되겠는가.

정 장관은 “(우리) 내부 문제인 만큼 (노동당 규약과) 연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6·15정상회담에서 보안법과 당 규약에 대한 비공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납득하기 어렵다. 역대 어느 정권이 북에 이처럼 관대했는지 모르겠다.

정 장관은 6·15회담에서 연계 논의가 있어서 우리가 보안법을 폐지하면 북한도 노동당 규약을 고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지만 설득력이 없다. 노동당 규약은 북한의 헌법에 우선한다. 당(黨) 우위 국가인 북한의 정체성이 여기서 나온다. 북이 이를 고칠 가능성은 1%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공통된 견해다.

노 대통령이나 정 장관은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연계 문제에 대해서도 한번쯤 깊이 생각했어야 한다. 적어도 북에 대해 같은 수준의 당 규약 개정 요구는 했어야 했다. 이러니까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보법을 폐기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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