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이해찬총리에 대한 기대

  • 입력 2004년 6월 30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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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연극이 성공하려면 훌륭한 대본만으로는 안 된다. 좋은 대본으로 얼마든지 나쁜 드라마를 만들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대본 못지않게 공연예술에서 핵심적 중요성을 갖는 것이 ‘캐스팅’, 즉 인물의 배역(配役)이다. 같은 연극도 주역이 바뀌면 다른 무대가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연극 무대만 그런 게 아니다. 배역의 중요성이 더욱 큰 무게를 갖는 곳이 정치라는 드라마 무대다.

▼과오 비판할 사람이 없는 정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해서 아무나 나서서 하면 되는 게 아니다. 가령 1970년대 초 이미 시숙(時熟)한 미국과 중국의 국교수립을 보수우파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추진했기 때문에 폭 넓은 국민적 합의를 얻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만일 그를 존 F 케네디 같은 리버럴한 대통령이 추진했다면 또 다른 댈러스의 총성이 울렸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영국의 어느 정치학자는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성공한 첫 번째 요인으로 그 주역이 국내외적으로 공인된 확고한 반파쇼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라는 사실을 들었다. 그러고 보면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두고두고 국론 분열을 가져오고 있는 것은 그 주역이 국내외에서 평가받는 반유신(維新)주의자이긴 하나 많은 국민은 그가 비(非)공산주의자인지는 몰라도 반(反)공산주의자라는 데 대해 갈수록 믿음을 잃어가는 데에 있는지 모른다.

이번에 노무현 정부에서 이해찬 총리를 얻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요 훌륭한 캐스팅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실감하는 것처럼 지금 노 대통령의 정부와 그의 개혁정책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과 여당은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해 다수파 국민의 지지를 업고 있다. 게다가 오늘의 한국이 개혁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도 여야를 넘어 보다 큰 국민적 합의를 일궈내고 있다.

개혁은 그러나 그 의지와 구호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또 개혁이 옳다 해서 모든 개혁정책이 좋은 것도 아니다. 선택이 필요한 것이다. 설혹 개혁정책이 좋다고 해도 그걸 한꺼번에 죄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순위를 가리고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아무리 이상적인 개혁구상이 있어도 재정상 시기상 당장 안 되는 것도 있다. 집권한 정부의 현실적 정치는 불가능한 것도 꿈꾸는 혁명적 낭만주의와 달리 어디까지나 ‘가능한 것의 예술’일 뿐이다.

지금 노 정권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개혁’이 이념적 성역이 되면서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만 되면 아무리 무리한 정책도 그것을 비판하고 저지할 도덕적 권위를 가진 힘이 없다는 데에 있다. 노 대통령도 전능이 아니고 그의 정책도 과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있을 수 있는 개혁 정권의 과오에 대해 비판할 사람이 노 대통령 주변에는 없는 것 같다. 민주화투쟁에는 전혀 참여한 일 없이 대통령이라면 아무나 두루 잘 섬긴 행정의 달인이나 명망가들은 아무리 내각의 높은 자리에 앉혀도 ‘수도를 옮긴다’, ‘서울대학을 없앤다’는 등 온갖 무리한 얘기들에 대해 한마디 소신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어떤 면에선 그들은 노무현 정권의 성패와는 별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에 “노”라고 말할수 있어야▼

노 정권의 운명에 진정 이해가 있는 사람은 노 대통령을 탄생시킨 사람들이다. 노 정권의 성패는 그대로 그들의 정치적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에 기재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잘못된 개혁 정책은 막아야 하고 좋은 정책도 경중을 따져 순위·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그러자면 때에 따라 대통령에 대해서도 “아니요!”라고 말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선 노 대통령 못지않게 개혁의 성패에 이해를 갖고, 민주화 투쟁과 그 희생을 체험했고, 5선 의원의 경험을 쌓은 이해찬 이상의 배역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의 총리 역할에 기대를 걸어보는 까닭이다. 이 총리는 또 충남 출신이기에 성급한 충청도 천도론에도 떳떳이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최정호 객원대기자·울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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