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언더우드家 이어 美장로교 한국대표직 인요한 교수

  • 입력 2004년 6월 22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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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장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면서 북한 지원활동을 하는 미국인이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을 오가는 3각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그는 말한다.-안철민기자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장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면서 북한 지원활동을 하는 미국인이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을 오가는 3각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그는 말한다.-안철민기자
전남 순천의 ‘불알친구’들과 함께 했던 수박 서리, 쥐불놀이를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간직한 ‘외국인 같지 않은 외국인’. 형과 함께 ‘유진 벨’ 재단을 만들어 북한 돕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의학교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의 인요한 소장(45·미국명 존 린튼)은 이런 독특한 이력에 최근 직함을 하나 추가했다.

그는 연세대 창립자인 언더우드 가(家)의 증손자 원한광씨 부부가 한국을 떠남에 따라 그 뒤를 이어 미국 장로교의 한국 대표(Long-term Voluntary Missionary Specialist)직을 맡은 것. 인 소장은 “남북통일에 대비해 대 북한 의료선교를 돕고, 연세대와 미국 장로교의 연결 고리를 유지하기 위해 나를 한국 대표로 임명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 초 이미 ‘한국 대표’직을 인계받은 인 소장은 한국에서의 선교 및 북한 돕기 현황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장로교 본부에 보고하고, 1년에 한번 총회에 참석하는 등의 일을 하게 된다. 얼핏 간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한국과 미국의 대표적 기독교 교단인 장로교의 가교 역이기 때문이다.

연세대관계자 등 인 소장을 아는 주변 인사들의 의미 부여는 더욱 특별하다. 미국 장로교가 인 소장 집안의 4대에 걸친 한국 사랑을 인정한 것이라는 얘기다.

1895년 한국에 온 미국 남장로교(당시는 미국 장로교단이 남북으로 분리돼 있었다) 유진 벨 선교사가 인 소장 집안의 4대에 걸친 한국 사랑의 시작이다. 인 소장의 진외증조부(아버지의 외할아버지)인 유진 벨 선교사는 당시 북장로교가 이미 성공적인 포교활동을 하고 있던 서울과 평양을 피해 기독교 불모지였던 호남으로 내려가 선교와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목포 양동교회를 비롯해 20여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광주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 목포 정명여학교, 여수 애향병원 등을 만들었다.

유진 벨 선교사의 ‘사업’은 사위인 윌리엄 린튼 선교사로 이어졌다. 린튼 선교사는 아내(샤롯) 아들(휴·인 소장의 아버지) 등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서 평생을 보내다시피 하며 선교와 봉사에 매진했다. 인 소장은 진외증조부가 한국에 온 지 100년 되는 1995년 형 스티브 린튼과 함께 ‘유진 벨 재단’을 설립했다.

인 소장은 매년 북한을 2, 3차례 방문해 결핵 병원과 요양소 등을 둘러보며 지원해준 의료용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자문에 응하기도 한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한국 의사’인 인 소장은 남한에서는 응급의학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1993년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했고 의사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3000여명에게 응급구조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키 190cm가 넘는 서양 거구이지만, 막걸리와 폭탄주를 잘 마시는 반면 와인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한국 체질’이다. 집에서는 가급적 한국어를 쓴다. “한국어를 쓰면 좀 더 권위가 섭니다. 가장의 권위가 서야 집안이 행복해집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대학생이던 인 소장은 광주 시민군과 외신 인터뷰의 통역을 맡았던 ‘죄’로 강제 출국될 뻔한 적도 있을 만큼,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 서 있기도 했다. 그 시절 만난 대학 후배 이지나씨(42·치과 원장)는 지금 그의 부인이다. 이씨는 남편의 북한 돕기를 지원하기 위해 중국 선양에 치과 분원을 차릴 정도로 대북 지원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 사이에 얽힌 인연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인 소장은 말한다.

“북한에 가면 이른바 ‘미제의 스파이’로 오해받기도 하죠. 남한에서는 최근 반미 분위기 때문에 술 취한 젊은이들로부터 시비를 당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은혜를 모르는 한국을 옹호한다는 욕을 듣습니다. 미국 출입국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미국을 방문할 때 까다로운 수속 절차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이 좋고, 한국을 사랑합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인요한(John Alderman Linton)은…

△1959년 전남 순천 생

△1987년 연세대 의대 졸

△1991년 미국 가정의학과 전문의

△1992년 한국 가정의학과 전문의

△2003년 고려대 대학원 박사

△1991년~현재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1991년~현재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 소장

△현재 유진 벨 재단 한국 대표

△현재 순천기독결핵재활원, 덕성여대, 대전 국제학교, 천리포 수목원, 재단법인 ‘밥퍼’ 등의 이사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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