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요이치 칼럼]韓美日 안보공동선언 고려할 때

  • 입력 2004년 6월 3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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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방한한 가와구치 요리코 일본 외상에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을 통해 보여준 정치지도력에 ‘각별한 경의’를 표했다. 방북이 북-일 국교정상화의 전기가 돼 북한 핵문제 해결과 북한 경제개방의 계기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정권 핵심 세력은 일본에 이런 주문을 했다고 한다.

①납치문제에 대한 북-일 양자회담과 핵문제에 관한 6자회담은 분리해 달라.

②북핵 폐기는 우선 핵동결부터 시작해야 한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

③북한 비핵화가 진행되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북한 지원창구로 재활용하는 데 일본이 동조해 주었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 폐기이다. 그러나 미국처럼 강경 자세로는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은 북한에도 ‘리비아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고이즈미 총리도 방북시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해 유엔의 경제제재 해제 조치를 받고 정권을 존속하게 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본받으라고 강조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를 일축했다. 노무현 정권의 외교정책 기획참모는 리비아의 핵폐기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영국과는 다소 다른 역할을 일본에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 유지에 심각한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0%가 한미동맹을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인의 60% 이상이 미국보다 중국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한국인의 안보관이나 미국관은 변하고 있다.

게다가 주한미군의 기지 이전, 나아가 재편 문제가 불거졌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2000여명을 이라크로 옮길 방침을 밝혔다. 한국은 내심 충격을 받았다.

한미 양국 모두 병력을 감축해도 대북 억지력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을 담당해 온 일본 정부 관리는 “문제는 감축 숫자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요한 안건이 한미간에 충분한 정책협의를 거치지 않고 결정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의 진흙탕에서 버둥거리는 미국은 괴로운 나머지 다른 주둔지에서 미군을 빼내고 있다. 이것이 재편의 실태다.

그런 재편인 만큼 정말로 대북 억지력에 영향이 없을까. 북한은, 또 중국은 이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주일미군에 대한 영향은 없을까. 재편 후 미군의 사명과 역할, 병력 구성은 어떻게 되나. 동맹의 목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그러나 한미일 사이에는 이런 문제에 관한 본격적 협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8년 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냉전 후 동맹 개념을 재정의하려 했던 것처럼 한미일 간에도 전략적 환경이 바뀐 상황에 맞게 안보공동선언을 작성해 협조 강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이런 뜻을 한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에게 전하자 “한미일 관계를 강화하면 애써 마련된 6자회담 자리가 북중러와 한미일로 양분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의 반응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6자회담이 있어서 한미일 협의가 더 쉽게 진전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중국이 걱정된다면 6자회담과 병행하면 충분하다. 한중일 정책협의도 강화할 수 있다.

새 시대의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열쇠는 각기 상호보완적 역할을 더욱 명확히 하고 그것을 서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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