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紙 독자인권위 좌담]적극적 정정보도 오히려 신뢰 얻어

  • 입력 2004년 6월 1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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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보도로 피해를 본 독자의 구제신청을 접수해 정정 또는 반론보도 여부를 심의 의결하는 독자인권위원회(POC·Press Oversight Committee) 제16차 정기회의가 지난달 27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인권위원들은 ‘언론보도와 인권, 최근의 언론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국민은 언론을 국가기관과 다름없는 권력주체로 보고 있다. 입법 사법 행정과 같은 반열에 놓고 ‘제4부’라고 부르는 이유도 사회적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언론은 사회적 권력주체라는 속성상 독자나 시청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를 안고 있다.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려면 얼마나 어려운지 웬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 그런 만큼 예방이나 피해구제를 위한 장치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동아일보가 자사와 무관한 제3자를 구성원으로 독자인권위원회를 설치한 것은 보도로 인한 개인의 기본권 침해를 예방하고 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든 사례로 평가된다.

―독자인권위원회는 중립적인 사외인사로 구성된 기구의 성격을 띠는 만큼 견제 장치로서의 실질적 권능이 있는 기관으로 운영돼야 한다. 만약 독자인권위원회가 형식적인 기관으로 머무른다면 신문의 사회적 권력을 견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물론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부르는 빌미를 제공하지나 않을지 염려되기도 한다.

―보도피해에 대한 언론의 구제노력은 아직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정정·반론보도를 싣는 경우를 봐도 실제로 보도된 기사와 비교하면 지극히 소홀하게 다뤄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지못해 반론문을 싣는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피해를 본 당사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형편’인데도 반론문은 실어주는 시늉만 하고는 손을 털어버리려는 듯하다고나 할까. 반론문을 보다 눈에 띄게 게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럴 때 기자에게는 개인의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 침해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더 적극적으로 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효과를 낳고 독자로부터 신뢰도 얻게 되니 장기적으로 신문 자체에도 득이 되지 않겠는가.

―대학생들에게 신문과 관련된 과제를 주었더니 선호도가 동아 조선 중앙과 이와 대립되는 신문들로 뚜렷하게 나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계는 이런 현상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이를 해소하자면 전문성과 합리성을 높이려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을 다룰 때 ‘찬성’ ‘반대’ 의견을 같은 비중으로 싣고,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으로 ‘우리의 주장’을 제시한다면 설득력을 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문의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방향으로 자기논리를 정당화하려는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 스스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정직하게 담아내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쓴소리도 진지하게 듣고 겸허하게 수용하려는 자세와 함께 전문성과 윤리성을 높여 설득력을 얻으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최근 들어 지면에서 ‘개혁의 시기가 아니라 민생이 시급하다’고 유난히 강조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마치 개혁을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인식되기 쉽다. 문제가 제기될 경우 전문적인 분석을 근거로 대안을 제시하는 등 심층보도로 설득력을 확보하는 정면대응의 자세가 바람직하겠다.

―기사의 제목을 뽑는 데서 때로는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사진을 선택해 실을 때도 의도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다. 지면제작과 관련해서는 ‘쿨하게 대하라’ ‘드라이하게 분석하라’ ‘독자를 생각하라’고 권하고 싶다.

―독자가 다양하게 나눠지는 현실인 만큼 다양한 계층을 폭넓게 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주면 좋겠다. 보도의 소재와 범위를 다양하게 넓히고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적극성을 보여주기 바란다.

―신문시장은 보수와 진보가 그런대로 균형 잡힌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방송시장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보도채널을 늘려서 방송도 다양한 목소리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시급하다. 사실상 정부가 지배하고 있는 방송이 최근 들어 ‘PD왕국’ ‘PD 저널리즘’이라고 불리듯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구호 아래 ‘자기들만의 도그마’에 빠져 막강한 여론지배력을 여과 없이 휘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개혁이 요구되고 또 시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방송규제와 신문규제의 논리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방송은 희소가치를 지닌 공적인 전파자원이므로 공익 목적에 사용해야 하는 의무가 따르는 데다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인 만큼 규제의 필요성이 있다. 이에 비해 신문은 독자가 자발적으로 비용을 들여서 이용하는 선택적 자원이므로 불공정거래와 관련한 사안을 제외하고는 자율성이 철저하게 보장돼야 한다.

―국가기관에 의한 신문시장의 제도적 규제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개혁’이니 ‘규제’니 하는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을 주목하고 이해할 필요는 있다.

―사상의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시장에 나온 신문은 독자의 자율적인 판단과 선택에 따라 판매부수가 결정되게 하는 것이 헌법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소비자에게 무가지나 경품을 제공해 부수를 확장하는 불공정거래 행위는 자유경쟁의 원칙에 위반되므로 개선돼야 한다. 공정한 보도와 경쟁은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간이자 요체이기 때문이다.

정리=김종하기자 1101ha@donga.com

▼참석자 명단 ▼

이영모(李永模·전 헌법재판관) 위원장

유의선(柳義善·이화여대 교수) 위원

장용석(張容碩·변호사) 위원

문혜진(文惠珍·참여연대 사회인권팀장) 위원


왼쪽부터 문혜진 위원, 이영모 위원장, 유의선 위원, 장용석 위원.-김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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