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김혁규 카드’의 딜레마

  • 입력 2004년 5월 31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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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규(金爀珪) 논란’의 핵심은 그가 과연 총리감이냐는 것이다. 중앙행정기관의 장(長)을 지휘 감독할 만한 그릇이 되는지, 대통령의 명(命)을 받고 보좌하되 총리에게 주어진 권한만큼은 제대로 지켜낼 뱃심이 있는지, 나라살림을 꾸려갈 식견과 능력을 갖추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동안의 논란은 그게 아니다. 철새-배신자론에 개혁적이지 못하다느니, 여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느니 하는 반대와 성공한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관선 민선 합쳐 10년 넘게 도지사를 했으니 총리 자격이 충분하지 않으냐는 식의 찬성이 고작이다.

▼‘누가 철새라고 하는가’▼

철새-배신자론을 보자. 한나라당으로서야 자기네 당 간판으로 경남지사를 세 번이나 했으면서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으로 말을 갈아탄 김씨를 철새, 배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철새를 이적료까지 줘가며 받아들였던 한나라당이 ‘철새니까 안 된다’고 해봐야 말발이 먹히기는 어렵다. 오히려 ‘변절’이 아니라 ‘전향’이라는 고건 전 국무총리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다. 김씨 또한 철새-배신자론을 강하게 반박한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지난해 12월 중순 당시 열린우리당은 원내의석 47석의 제3당으로 지지율도 15∼16%의 바닥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자리를 약속받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대통령은 총선에서 제1당이 되는 정당에 총리추천권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제1당이 되리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지방분권이야말로 국가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앙무대로 나가 나름의 경험과 역할을 통해 분권에 힘을 보태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나는 철새도 배신자도 아니다.”

여당 일각에서 나오는 개혁적이지 못하고 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를 보자. 한마디로 미국에서 가방장사로 돈 벌어 YS(김영삼 전 대통령) 밀었던 인물을 야당도 싫다는데 굳이 총리 시킬 필요가 뭐 있느냐, ‘YS 사람’은 아무래도 좀 그렇지 않으냐, 경남지사를 잘했다고 하지만 성장과 기업마인드를 앞세우는 걸 봐서는 개혁과는 거리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개혁성 시비에 대해서도 김씨는 단호하다.

“생산성, 효율성 없는 개혁은 한(恨)풀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도지사 할 때 외자유치 많이 했고, 특히 집권측이 어려울 때 도와줬다고 총리 자리에 덜컥 앉힐 수는 없는 일이다. 총리감의 조건을 냉정하게 따져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어차피 정상적으로 풀어가기는 틀린 듯싶다. 노 대통령은 ‘김혁규 총리 카드’를 동진(東進)의 교두보로 삼으려 하고, 한나라당은 어떡하든 텃밭인 영남이 흔들리는 걸 막으려 해서야 정상적인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 대통령은 “상대방에게 양보받기 위해, 공격하기 위해 상생(相生)을 내세우면 실패한다”고 하니 물러설 기세도 아니다.

이런 마당에 인사청문회를 열어봐야 감정싸움에 그칠 공산이 크다. 남는 것은 표 대결인데 문제는 여당에서 ‘반란표’가 나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문희상 대통령정치특보가 나서서 겁을 준다고 해서 열린우리당의 ‘당찬 초선(初選)’들이 거수기 노릇을 해줄지도 의문이다. 표결에서 지는 날이면 김씨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다. 김씨도 그걸 잘 안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자리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내정통보를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하니, 마니 할 수도 없잖은가.”

▼선택도, 결과도 대통령의 몫▼

그러나 노 대통령이 일단 총리 후보로 공식 지명하면 김씨에게 달리 선택할 길은 없어 보인다. 결과야 어떻든 끝까지 가볼 수밖에. 결국 선택도, 그에 따른 결과도 대통령의 몫이 돼버린다. 이렇게 되면 ‘김혁규 카드’는 ‘노무현 카드’가 되는 셈이다.

아무튼 총리 인사를 하면서도 정작 총리감 여부는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기(氣)부터 읽어야 하는 현실, 더구나 이것이 집권 2기의 출발이라니 걱정 아닌가.

전진우 논설위원실장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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