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29>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4월 18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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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萬을 산 채 묻고 ⑪

“이제 섬현(陝縣)으로 가자!”

안읍성(安邑城)을 떨어뜨린 항우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군사를 섬현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섬현으로 바로 갈 수는 없었다. 뒤로 풀어둔 세작이 달려와 동쪽의 급한 소식을 전했다.

“진나라의 전(前) 군수와 현령 몇이 5만 군사를 모아 낙양(洛陽)을 차지하고 신안을 되찾아갔다고 합니다. 그 사이 저들의 세력이 늘어 지금은 10만 대군으로 자랐는데, 곧 관중의 진군과 호응하여 생매장된 20만 동족의 원수를 갚을 것이라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급한 소식은 더 있었다. 남쪽에 풀었던 세작이 뜻밖의 소문을 전했다.

“패공 유방이 무관(武關)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 뒤 다시 요관(嶢關)을 깨고 관중으로 들어가 벌써 패상(覇上)에 이르렀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 말에 항우는 오래 잊고 지내다시피 한 패공 유방을 떠올렸다.

기억 속의 유방은 겉으로는 한없이 무능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안은 기이할 만큼 큰 배포와 은근하면서도 벗어나기 어려울 만큼 끈끈하게 안아오는 힘으로 차있던 사내였다. 거느린 세력도 크지 않고 그 자신의 군사적 재능도 이렇다 할 게 없어 무시해 오고는 있어도 항우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소문을 듣고 나니 항우는 새삼 장대하게 부풀어 오른 유방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만 명도 안 되는 군사로 떠났지만 그라면 정말로 관중에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가장 빠른 길을 이미 알고 있어, 그때 두말없이 회왕(懷王)의 명을 받들었을 것이다. 내가 관동(關東)에서 진나라의 주력을 맞아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동안 그는 느물느물 웃어가며 비어있는 하남(河南)을 거둔 뒤에 방비가 약한 무관을 넘었다…. 내가 싸움에만 골몰하여 너무 오래 관동에서 우물거렸구나. 지난날 회왕은 먼저 관중에 든 사람을 관중왕(關中王)으로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천하 대사에는 희언(戱言)이 없는 법. 자칫하면 저 시골 건달에게 관중왕 자리를 빼앗기고 말겠구나….)

그러자 항우는 갑작스레 마음이 급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함곡관을 깨고 관중으로 짓쳐 들고 싶었지만 싸움이란 게 그렇지가 않았다. 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대군을 낙양으로 몰았다.

하지만 적은 이미 항우의 강점과 약점을 고루 알고 있었다. 한때 진나라의 관병(官兵)이었던 군사답지 않게 되도록 항우와 정면으로 맞서기를 피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져주지도 않았다. 여러 갈래로 나누어 맞서다가 힘이 부치면 미련 없이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그러다가 초나라 군사가 돌아서면 어디선가 뒤쫓아 와 등짝을 후려쳤다.

그 바람에 항우는 다시 열흘이나 낙양 부근에서 허비하고서야 그들이 다시 모여 자신을 뒤쫓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쫓아버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항우가 지친 군사를 이끌고 섬현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겨울로 접어든 시월이었다.

그 사이 섬현은 항우의 대군을 맞을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성벽의 두께와 높이를 더하고 성벽 위에는 통나무와 바위덩이를 쌓아두어 초군(楚軍)의 공성(攻城)에 대비했다. 또 군량과 땔감을 넉넉히 모아 오랜 농성전(籠城戰)에도 버텨낼 수 있도록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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