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런어웨이'…법정 '게임의 법칙'

  • 입력 2004년 1월 15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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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올댓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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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런 어웨이’에는 ‘배심원 컨설턴트’란 낯선 직종이 등장한다. 배심원 컨설턴트란 배심원으로 선정된 사람들을 분석하고 감시해 재판 결과를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로비스트다.

‘런 어웨이’는 ‘타임 투 킬’ ‘야망의 함정’ ‘펠리칸 브리프’를 쓴 존 그리셤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했다. 배심원단이 약점 캐내기에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불안정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보여줌으로써 정의는 없고 오직 게임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미국 사법체계의 냉혹한 현실을 들춰낸다.

총기난사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이 무기회사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다. 무기회사는 탁월한 배심원 컨설턴트 랜킨 피츠(진 해크먼)를 고용한다. 양심적인 변호사 웬델 로(더스틴 호프먼)가 애를 쓰지만 승부는 피츠에게 기울어 간다. 승리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피츠는 배심원단 중 한 명인 이스터(존 큐잭)가 배심원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스터의 여자친구인 말리(레이철 와이즈)는 1000만달러를 주면 소송에서 이기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로와 피츠에게 동시에 던진다.

이 법정 스릴러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하나는 배심원단이라는 차별화된 소재다. 또 다른 하나는 더스틴 호프먼과 진 해크먼이란 전설적인 두 배우를 가로축으로 하고 젊은 배우 존 큐잭과 레이철 와이즈를 세로축으로 해 교직(交織)한 초호화 캐스팅이다.

법정 드라마는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선악구도를 운명적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원고도 피고도 아닌, 배심원단에 돋보기를 들이댐으로써 클라이맥스 지점까지 선악구도를 물밑에 숨긴 채 긴장을 끌어올리는 데 전략적으로 성공한다. 막판 반전을 통해 드러나는 선악구도의 정체는 사실 좀 신파적이지만…. 덧붙여 배심원 컨설턴트의 세계를 엿보는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그는 “(배심원으로) 뚱보는 유리해. 뚱보는 동정심이 없거든”이라며 외모로 성향까지 분석해 재판에 유리한지를 저울질한다.

호화배역들은 이 영화의 약이자 독이다. 이들의 강력한 캐릭터에 기댄 탓에, 영화는 초반에 한껏 벌여놓은 배심원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막판까지 추스르지 못한다. ‘비수를 숨기고 있을 것만 같던’ 시각장애인 배심원장, 총기 사용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퇴역 군인 등 살아 꿈틀거리던 캐릭터들은 피츠와 로의 격돌이 심화되는 사이 슬그머니 얼어붙어 버린다.

진 해크먼과 더스틴 호프먼은 46년간 친구로 지내오다가 처음으로 한 영화에 출연해 연기대결을 펼쳤다. 법원 화장실에서 벌이는 피츠와 로의 설전은 매우 창조적이거나 감동적이진 않지만, 노련한 배우들의 경륜을 담아낸다. 두 사람은 관객이 그들에 대해 상상하고 원하고 안심하는 딱 그런 연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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