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올해 서울에서 사라진 것들

입력 2003-12-26 18:03수정 2009-10-10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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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고가
청계고가 삼일고가 원남고가도로, 황학동 도깨비시장,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1890∼1957)과 빙허 현진건의 고택,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달동네 난곡마을, 그리고 피맛골….

2003년 한 해 서울에서 사라진 것들이다. 더러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더러는 역사의 흔적을 무시한 채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욕망에 이끌려 사라져갔다.

‘햇볕이 잘 들어 난초가 무성하게 자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관악구 신림7동 난곡(蘭谷)마을. 1970년대 이후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이곳은 5월 완전히 철거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난곡은 겨울 햇살 아래 중장비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고 2006년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변신하게 된다.


올해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역시 청계고가도로 철거였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계기로 서울 도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고가도로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었다.

7월 초 철거공사에 들어가 9월 말 완전 철거됐고 10월 초엔 삼일고가가 사라졌다. 이에 앞서 6월엔 창경궁 옆 원남고가도 철거됐다.

“서울을 짓누르고 있던 육중한 고가가 사라지고 청계로에서 하늘을 볼 수 있다니….”

“삼일고가 자리에서 남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죠.”

그러나 이러한 희망찬 철거와는 달리 무참하게 파괴된 건물들도 적지 않다.

1월 초 서울 강북구 우이동 육당 최남선의 고택 ‘소원(素園)’이 철거되기 시작하더니 3월엔 안채까지 완전히 헐려나갔다. 육당의 후손들이 “건물이 남아있으면 자꾸만 친일이라는 아버지의 상처가 덧나는 것 같다”며 이 건물을 한 건설사에 팔았으니 철거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이곳엔 5층짜리 상가가 들어섰고 그 옆에선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1월 말엔 연세대 교내의 연합신학대학원(연신원) 건물이 무참히 헐렸다. 1964년 건립돼 고딕양식의 멋진 자태 덕분에 연세대의 명물로 꼽혔던 건물. 대학측은 교수들의 보존 주장에도 불구하고 1월 27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건물을 철거했다. “대학 지성의 붕괴를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는 한 교수의 외침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10월엔 종로구 청진동의 피맛골 일부가 철거에 들어갔다. 현재 철거공사가 한창이고 2006년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피맛골은 조선시대부터 서민들이 지체 높은 사람들의 행차를 피해 다녔다는 ‘피마(避馬)’에서 유래된 거리이름. 목로주점과 국밥집 등 서민의 애환이 서린 그 낭만의 공간도 머지않아 술자리의 추억거리로만 남을 것 같다.

11월엔 종로구 부암동 현진건 고택이 철거되는 등 2003년 한 해 서울에선 무언가가 끊임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무언가가 다시 들어섰다.

건축월간지 ‘공간’ 이주연 주간의 말.

“서울은 시간의 흔적에 대해 너무 무심합니다. 특히 우리 곁에 남아있는 근대 이후, 가까운 과거의 흔적을 지키는 데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얼마 전인 11월 마지막 날, 청계천 복원공사에 반대하던 노점상이 전격 철거됐다. 청계8가 황학동 도깨비시장도 포함돼 있었다. 서글프면서도 역동적이었던 곳, 황학동시장. 황학동의 소멸에 대해 많은 사람이 우려했지만 이곳 상인들은 동대문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겨 27일부터 좌판을 다시 펼친다. 이곳에서 황학동의 낭만은 계속될 수 있을지….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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