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휘발유 논란’ 세녹스 판정승

  • 입력 2003년 11월 20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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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휘발유냐 대체 에너지냐는 논란을 빚었던 ‘세녹스’에 대해 법원이 20일 유사휘발유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 고객이 세녹스를 구입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가짜 휘발유냐 대체 에너지냐는 논란을 빚었던 ‘세녹스’에 대해 법원이 20일 유사휘발유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 고객이 세녹스를 구입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유사석유제품 논란을 빚어왔던 ‘세녹스’에 대해 법원이 ‘석유사업법이 금지하고 있는 유사휘발유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세녹스 판매에 대해서는 위법행위로 규정해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서울지법 형사2단독 박동영(朴東英) 부장판사는 20일 유사석유제품 세녹스를 판매한 혐의(석유사업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프리플라이트 사장 성모씨(50·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관련해 주유소협회가 최근 재판부에 “무죄 판결이 나오면 동맹휴업도 불사하겠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한 상태여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현행 법률상 자동차 연료 및 첨가물질의 허용 기준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미비돼 있기 때문에 ‘유사휘발유’를 금지한 석유사업법 26조는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세녹스의 경우 제조 주체가 분명하고 개발 과정과 결과물 심사 과정이 엄격한 적법 절차를 거쳤으므로 유사휘발유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세녹스에 대한 품질 감정 결과 대부분의 항목에서 자동차 연료 기준에 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왔다”며 “자동차 연료 허용 기준 등에 관한 법률이 미비하다고 해서 산업자원부의 임의적인 결정과 법집행에 의존할 수만은 없어 이 같은 판결을 내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판결이 세녹스가 혁신적이고 우수한 제품이라고 공인한 것은 아니며, 올해 3월 산자부가 관련 업체에 세녹스 원료공급 중단을 명령한 것은 여전히 유효하므로 판결 이후에도 세녹스 판매는 위법행위”라고 말했다.

따라서 “세녹스측은 행정소송으로 산자부의 명령을 문제 삼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6월 세녹스는 환경부로부터 ‘자동차 연료첨가제’로 허가를 받아 출시됐으나 산자부로부터 ‘유사휘발유’ 판정을 받은 뒤 집중적인 단속을 받았으며 8월 첨가제의 비율을 1% 미만으로 제한하는 환경부의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이 발효된 후 사실상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재판부는 이날 유사석유제품 ‘LP파워’를 제조 판매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음모씨(60)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세녹스: 벤처기업인 프리플라이트가 솔벤트, 톨루엔, 메틸알코올을 60대 30 대 10의 비율로 섞어 만든 일종의 ‘인공 합성 연료’. L당 가격이 990원(부가가치세 포함)에 불과한데다 휘발유와 성능이 비슷해 인기를 끌었다.

▼세녹스 '무죄판결' 의미▼

서울지방법원이 20일 ‘세녹스’를 정상적인 석유제품으로 인정함에 따라 대체연료의 합법적인 유통 가능성이 더 커졌다.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석유제품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녹스가 다시 소비자에게 판매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세녹스에 대한 산업자원부의 제조·판매 금지조치는 지금처럼 유효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또 세녹스가 연료첨가제가 아닌 석유제품으로 인정되면 휘발유와 똑같은 세금을 물게 돼 지금과 같은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판결 내용=서울지법은 이날 판결에서 산자부가 세녹스에 적용한 석유사업법상의 처분 행위 자체에 제동을 걸었다. 산자부는 세녹스를 정품이 아닌 유사휘발유로 판정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 법률인 석유사업법은 유사석유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품질면에서도 옥탄가가 일반 휘발유보다 조금 낮을 뿐 나머지 항목은 기준에 적합하다고 검증된 만큼 유사석유제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소비자 판매는 쉽지 않을 듯=이번 법원 판결은 세녹스의 성격을 정의했을 뿐 제조나 판매를 승인한 것은 아니다. 특히 법원은 산자부가 이번 재판과 별도로 세녹스에 내린 제조·판매 금지조치(용제수급조정명령)는 유효함을 확인해줬다.

프리플라이트가 행정소송을 통해 이 조치를 무효화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세금 문제가 남아 있어 실제 생산이 재개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국세청은 세녹스를 유사석유제품으로 판정해 600억원가량의 세금을 부과했지만 프리플라이트는 이에 불복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세녹스가 석유제품이 아닌 연료첨가제이기 때문에 휘발유에 붙는 세금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올해 5월 29일 세녹스 생산공장을 압류하고 가동을 중단시켰다.

프리플라이트의 주장대로 세녹스가 연료첨가제로 인정된다고 해도 환경부가 8월 초 개정한 대기환경보전법을 감안하면 실제 유통될 확률은 더욱 줄어든다. 이 법에서는 연료첨가제의 첨가 비율을 전체 연료의 1% 이내로 제한하고 판매 용기를 0.55L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산자부는 올해 안에 석유사업법을 개정해 유사석유제품의 구체적인 항목을 예시하고 제조와 판매를 근원적으로 봉쇄한다는 계획이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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