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허승호/하나로통신과 대기업 氣싸움

  • 입력 2003년 8월 17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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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하나로통신의 미래가 결정되는 시기다. 하나로통신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1억달러어치의 만기가 22일 금요일에 돌아오는 것이다.

윤창번(尹敞繁) 하나로통신 사장은 이 회사의 3대 모기업인 LG(지분 13.05%) 삼성(8.49%) SK그룹(5.50%)에 대해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했다. 각각 1000억원씩, 3000억원을 기업어음(CP)으로 빌려달라는 것.

그러나 이들이 돈을 융통해줄지 미지수다. 지금까지 아들(子)회사의 생명이 오락가락하는데도 ‘죽어도 할 수 없지’식의 기싸움을 해온 비정한 엄마(母)회사들이기 때문이다.

전말은 이러하다.

하나로는 중·장기 운영자금 5000억원을 7월 초에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AIG컨소시엄이 주당 3100원에 투자키로 약속한 것. 그러나 LG그룹이 ‘헐값매각’이라며 이사회에서 부결시켰다. 비난을 듣던 LG는 5000억원 유상증자 방안을 내놨다. 이제는 삼성과 SK가 주총에서 부결시켰다. 하나로를 LG그룹에 완전히 편입시키려는 의도로 본 것이다.

외자유치도 못하고 유상증자도 실패하자 하나로는 대주주들에게 ‘긴급자금이라도 달라’며 손을 벌린 것. 요즘 하나로는 외자유치도 다시 시도 중이다. 그러나 이제는 쉽지도 않을 뿐 아니라 된다 해도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할 처지. 국내조달이라는 카드가 사라져 협상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에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 있다.

20년형을 받게 될 은행강도를 저지른 A, B 두 공범이 있다 하자. 경찰은 두 사람이 1년형을 받게 될 차량절도에 대한 증거만을 가지고 있다. 경찰은 둘을 분리감금하고 각각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당장 널 1년간 감옥에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네가 강도행위를 자백하고 네 친구를 주범이라 증언하면 너는 수사에 협조한 대가로 석방되고 친구 혼자 20년을 살게 된다. 둘 다 공범이라 자백하면 8년씩 살게 된다.”

A는 B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른다. 치사한 은행강도인 A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만약 B가 자백을 한다면 나도 자백하는 것이 유리하다(20년형보다 8년형이 짧다). B가 입을 다문다 해도 난 자백하는 것이 낫다(나는 바로 석방된다).”

결국은 둘 다 자백하고 8년씩 형을 산다. 대화가 막히고 신뢰가 허물어지면 이렇듯 함께 망해갈 수 있다. 하나로통신의 대주주들이 바로 이 꼴이다.

대주주들이 지분놀음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기업과 소액주주들이다.

기업이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공급하지 못해서, 또 경영을 잘못해서 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멀쩡히 살 수 있는 기업이 대주주간 갈등 때문에 무너진다면 기가 막힌 일이다.

소액주주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60%를 넘는 소액주주들이 단결돼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10% 안팎의 대주주들로부터 뒤통수를 맞는 것이다.

과연 대주주들이 급전(急錢)을 마련해줄지, 그리고 함께 망하는 마이너스섬 게임을 언제쯤 멈출지 궁금하다.

허승호 경제부차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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