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24>어느날 만난 추억

  • 입력 2003년 8월 1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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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산길을 걷다가 늘 가던 길을 버리고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걸었다. 그 길은 가르마 같은 길을 따라 마을로 이어지고 있었다. 뜨문뜨문 보이는 집과 집 사이의 거리, 도시와는 달리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그 거리는 시골 사람들의 여유로운 마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떨어져 있어 정다워 보이는 거리의 아름다움을 그 길을 걸으며 나는 보았다.

얼마를 걸었을까. 큰길과 만나는 길모퉁이에서 아주 작은 초등학교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시골 초등학교의 분교였다. 자그마한 교문 기둥에 붙은 ‘분교’라는 표지를 보는 순간 아주 고운 설렘에 사로잡혔다. 나는 교문을 들어서 학교의 풍경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다. 이순신 장군 동상, 길게 이어진 교실의 유리 창문, 그네, 미끄럼틀, 운동장을 빙 둘러 서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들. 그 하나하나는 모두 내게 추억을 말하고 있었다.

그 풍경들 앞에서 나는 소년 시절의 나를 보았다. 음악시간이면 교실로 오르간을 나르던 모습과 유리창 너머 예쁜 소녀를 훔쳐보며 수줍어하던 소년의 모습을. 그리고 저물도록 운동장에서 뛰어 놀아도 지치지 않던 그 시절의 즐거움을. 방학을 맞아 조용해진 학교의 나무 그늘에 앉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의 한때를 나는 오랫동안 즐겼다.

나무의 그늘 아래서 더위를 잊듯 우리는 추억이라는 시간의 그늘 아래서 가끔씩은 빠른 삶의 속도를 벗어나야 한다. 그 아래서는 아름다움도 나눔도 사랑도 그 의미를 상실하고야 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까지도 잃고야 마는 것이다.

목마르면 물 마시고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던 선사들의 삶은 여유롭다. 욕망을 벗어나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삶의 모습에서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바쁜 것은 언제나 욕망이고 ‘나’는 언제나 한가롭다는 그 소식을 아는 이 그 얼마일까.

가끔씩 추억의 한가운데 서보라. 그러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게 되리라. 그때 비로소 그대도 삶의 빠른 속도를 벗어나 한가로운 삶의 소식과 만나게 되리라.

성전스님 월간 해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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