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기자의 현장칼럼]王고수 장관님 따라하기

  • 입력 2003년 7월 10일 16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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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제 장관은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이어폰을 부착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3일 정보통신부 장관실 접견실에서.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진대제 장관은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이어폰을 부착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3일 정보통신부 장관실 접견실에서.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정보통신부의 한 고위 간부는 말했다.

“진대제(陳大濟·51) 장관은 커리어면에서 역대 정통부 장관의 ‘완결판’입니다. 장관으로서도 승승장구할까 걱정했습니다만 솔직함과 아이디어로 직원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진 장관은 2월 취임 때부터 장남의 병역 면제와 한국 국적 포기, 99억원대의 고액 재산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참여연대는 1인 시위와 성명 등을 통해 진 장관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과 스톡옵션의 매각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취임 초기의 논란을 청와대가 직접 나서 진화한 것은 진 장관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진 장관은 서울대,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석사), 스탠퍼드대(박사) 출신으로 1985년 삼성에 스카우트된 뒤 세계 최초로 64메가D램을 개발했다. 2000년부터는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을 지내며 삼성의 간판 전문경영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민간 부문에서 창조적인 스타였던 진 장관의 마인드가 정부부처인 정통부에는 어떻게 이식되고 있을까. 성공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을까. 2, 3, 5일 진 장관을 동행 취재했고, 3일에는 단독 인터뷰를 했다.

●디테일에 강한 장관

“왜 파워포인트를 준비하지 않았나요.”(진 장관)

3일 오전 11시 정통부 장관실. 기자실에서의 정례 브리핑을 앞두고 장관의 지적에 공보관과 장관 비서관들이 난처해졌다.

진 장관은 책상 앞에 놓인 삼성의 초슬림형 노트북 컴퓨터 ‘센스Q’를 활용해 직접 브리핑용 파워포인트를 수정했다.

“시각적 효과가 뛰어난 파워포인트는 커뮤니케이션을 명확히 합니다. 텍스트로 서너 장 필요한 내용이 파워포인트에서는 단 한 장으로 압축됩니다.”(진 장관)

진 장관 취임 이후 정통부 간부들은 어쩔 수 없이 밤을 새워 파워포인트를 배워 이제는 ‘파워포인트 보고’가 정착됐다. 그는 정통부 내에서 파워포인트를 가장 잘 다루는 인물로 통한다.

진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직접 레이저 펜을 들고 설명했다.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속사포처럼 쏟아지자 ‘젊은 일꾼’ 이미지의 진 장관은 거침없는 태도로 답변을 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어떤 현안에 대해서도 구체적 해답이 없다”며 불평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정보통신 분야에 관심이 많아 관련 업계지까지 열심히 읽으세요. 얼마 전 제게 직접 전화해 ‘통신 3강 정책 재검토’란 제목의 보도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직접 대통령을 찾아뵙고 설명 드렸죠.”(진 장관)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전격 발탁한 인사인 만큼 진 장관에 대한 신의가 각별하다”고 전했고, 정통부 관계자는 “삼성 출신의 진 장관이 노 대통령의 코드를 잘 파악한다”고 말했다. 3일 진 장관의 책상 위에는 ‘미션 2만달러’란 제목의 책이 놓여 있었다. 노 대통령은 2일 청와대 직원조회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착실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5일 오전 9시 간부회의에서 진 장관은 회의용 파워포인트 초기 화면의 지구본 그림 각도를 지적했다.

“저 지구본을 23.5도 기울게 하고, 좀 더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바꾸세요.”

정통부의 한 고위 간부는 “진 장관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고 평했다.

●장벽 없는 브레인스토밍

3일 오후 4시 장관실에 딸린 접견실에서는 학계와 업계 전문가 7명을 초빙한 ‘방중 관련 간담회’가 열렸다. 7일 노 대통령을 수행해 중국을 방문하는 진 장관의 사전 준비였다.

이날 토의 주제는 중국이 정상방문 의제로 요청한 ‘한중간 그리드 컴퓨팅(Grid Computing·고성능 컴퓨터를 고속 네트워크로 연결해 이용하는 차세대 인터넷 서비스)과 알고리즘 네트워크 협력’.

진 장관은 “중국이 희한한 의제를 냈는데, 분명 복선을 깔고 있을테니 전문가 의견을 듣고 감을 잡아야겠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구두를 벗고 발을 끌어올려 의자 위에서 양반다리 자세를 했으며 가끔씩 두 팔을 위로 들어올려 스트레칭도 했다.

전문가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펼치는 동안 중국의 복선이 무엇인지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 보세요. 덥석 물면 안 되지. (정통부 서기관을 가리키며) 외교통상부에 바로 전화해 외교협정을 확인하세요.(다시 전문가들에게) 다들 생각이 어떠세요. 지금 바로 결론을 짓고 넘어가죠.”(진 장관)

수년째 정통부 업무 자문을 맡고 있는 한양대 경영학과 장석권 교수는 “역대 민간기업 출신 장관과 비교해 보아도 진 장관은 기업의 방법론 중에서 정부에 필요한 것은 주저없이 바로 가져다 쓰고, 문제에 곧바로 들어가 빨리 해결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제9대 정통부 장관인 진 장관은 대우전자 출신의 배순훈 전 장관(4대), 삼성SDS 출신의 남궁석 전 장관(5대), 한국통신기술㈜ 출신의 양승택 전 장관(7대), KT출신의 이상철 전 장관(8대)에 이어 민간기업 출신으로 5번째 정통부 장관이다.

2일 오전 10시반 정통부 14층 중회의실에서 열린 ‘2003년도 상반기 심사평가 결과 보고회’. 정통부 한 고위 간부가 공무원 특유의 딱딱한 어투로 대학교수 심사평가위원들에게 답변을 하자 진 장관이 조크를 던졌다.

“위원들 이름 앞에 ‘존경하는’도 붙이지 그래요. 꼭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말하는 것 같잖아요.”

발표하던 간부도, 좌중도 모두 파안대소했다.

진 장관은 회의하고 문서 만드는 불필요한 시간을 절약하자며 정통부 내 실국별, 개인별 업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직무 프로세스인 ‘템플릿(Template)’을 도입했다. 도입 초기 정통부 공무원들이 개념을 몰라 영한사전을 뒤적였다고 했다.

● 헬로, ‘미스터 디지털’ 장관

3일 인터뷰에서 진 장관이 “답변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 질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공무원 조직과 일반 기업 중 어느 쪽이 더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가’였고, 다른 하나는 ‘핵심인력을 키워내는 기업처럼 공무원 조직에서도 스타가 필요한가’였다.

“기업은 70%만 확신이 있어도 최고 경영자(CEO)가 ‘내가 나머지 30%를 책임질 테니 그냥 밀어붙이자’고 주장할 수 있는데, 국민의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조직에서는 99%가 만족해도 나머지 1%를 버릴 수 없어요. 정부 부처의 리더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추진력 등 기업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도 갖춰야 하지만 그보다는 전체 국민의 애로사항을 면밀히 배려해야 합니다. 튀는 행동으로 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스스로를 ‘얼리 어댑터’라고 생각하는 진 장관은 삼성전자 재직 시절 ‘미스터 디지털’이란 별명을 얻었다. 6년째 손목에 차고 있는 ‘카시오’ 전자시계는 아날로그 시침과 디지털 자판이 결합된 디자인으로 세계 각국의 시간을 편리하게 비교할 수 있다.

휴대전화는 늘 최신 모델이 나올 때마다 구입한다. 최근에는 카메라폰과 비디오 기능이 내장된 삼성 애니콜 ‘IMT-2000’ 휴대전화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이어폰을 삼성에 제작 의뢰해 사용한다.

최근 인권 침해 소지로 논란을 빚는 카메라폰에 대해 진 장관은 “기술 발달이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규제한다면 사업가는 장사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기업가’ 논리를 폈다.

늘 디지털카메라를 휴대하는 그는 5월 노 대통령 방미 수행 때는 직접 찍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사진을 파워포인트 자료에 삽입해 외국 인사들 앞에서 시연했다.

진 장관은 종종 가족의 안부를 묻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부인 김혜경씨(50)와 두 딸에게 동시에 보낸다. 이들은 모두 수초 만에 답장을 보내온다. 큰 딸은 연세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앞두고 이달 결혼한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장남에 이어 둘째까지 미국행을 택한 것이다.

“지능지수(IQ)가 148이 넘습니까”라고 묻자 진 장관은 “몰라요. 난 그만큼 안 되는 것 같은데…. IQ는 별개의 얘기인 것 같아요. 내 (성공의) 경우 노력의 결과겠죠”라고 답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권영세 의원(한나라당)의 말에는 진 장관에 대한 평가가 집약돼 있다.

“수익 창출을 역설하는 진 장관이 기업의 개념을 정부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취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정책의 가시적 성과는 없다. 역대 정통부 장관의 평균 임기가 1년 남짓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의 전문성이 발휘될 시간이 길게 남지 않았다.”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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