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모든것은 땅으로부터'…농업으로 돌아가자

  • 입력 2003년 5월 23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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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땅으로부터’는 농업을 수치로 제시하는 산업주의 농업을 비판하고, 소규모 농업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16세기 농민의 생활을 담은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뢰겔의 ‘추수’.동아일보 자료사진
‘모든 것은 땅으로부터’는 농업을 수치로 제시하는 산업주의 농업을 비판하고, 소규모 농업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16세기 농민의 생활을 담은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뢰겔의 ‘추수’.동아일보 자료사진
◇모든 것은 땅으로부터/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피터 고어링, 존 페이지 지음/정영목 옮김·256쪽 8000원 시공사

아이가 맛있는 수박을 먹으면서 까만 씨를 손바닥에 모으고는 한마디를 던진다.

“아빠 이 씨 가져다가 할머니네 밭에 심자. 내년에도 이렇게 맛있는 수박 먹게.”

자연의 이치는 이해했지만 산업적 관계에 둘러싸인 우리네 삶은 알 길 없는 아이에게, 그 씨를 심어도 수박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해주기란 간단치 않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대중매체의 힘과 아이들의 아토피와 비만을 염려하는 엄마들의 열성 덕에 유기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늘고 있다. 급기야 슈퍼마켓에는 수입한 유기농산물을 가공한 식품들이 진열되고, 생협(생활협동조합) 소속 매장에도 수입 유기농산물에 대한 문의가 있다고 한다. 환경 계몽에 힘입어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한 건강의 위협은 느끼고 있지만, 이미 익숙해진 농업의 피폐나 지역공동체의 파괴는 절실하지 못하다.

인류의 역사는 농사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농업이 산업화된 이후 보릿고개를 넘는 줄 알았는데 실상 우리는 생존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 수천년을 근본으로 여겨온 농업이거늘 불과 한 세대 만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제 우리의 식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지구를 반 바퀴 돌며 화석연료를 잔뜩 쓰고 여기까지 온 식품들로 차려지고 있다. 자기가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자식에게 먹이는 유일한 동물, 우리 삶의 모습이다. 우리가 어쩌다가 아슬아슬한 줄 위에 올라앉았는지 그 내막과 현상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볼 일이다.

‘오래된 미래’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라다크 프로젝트’ 팀의 이 연구는 오늘날의 농업을 수치로 제시하는 산업주의 시각을 비판하며 통합적이고 근본적인 생태론적 관점에서 재검토한 보고서다. 농업의 산업화가 가져온 환경오염과 건강의 위협, 공동체의 파괴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허울뿐인 세계화를 주장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과 관료, 전문가 집단을 고발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소규모 생산 농민들의 유기농업과 소비자들의 지역 공동체를 위한 활동이다. 다행히도 지역적 농업은 아직 남아있고 민초들의 연대는 시작되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지구적 전환’의 무게를 담고 있지만, 여백 많은 200여쪽의 재생지에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무게감 없이 읽어 내릴 수 있다. 대대손손 잘 먹고 더불어 잘 사는 법을 많은 자료와 사례를 들어 근본으로부터 제시하고 있는 교양서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의 현실 정치도 볼 수 있다. ‘잡초’를 어떻게 볼 것인지,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때로는 통제할 것인지.

지속가능한 대안의 메시지를 전하는 번역서들은 학술적 의미와 실용적 가치를 모두 가지고 있다. 앞으로는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홈페이지 주소 등의 정보와 국내 관련 정보들도 수록해 주기를 비슷한 책을 준비 중인 출판 기획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근행 생태공동체운동센터 사무국장 ecolk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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