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우궈광/天安門사태와 사스의 공통점

  • 입력 2003년 5월 21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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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라는 잔혹한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은 중국에서 6·4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1989년 6월 4일 새벽 중국 인민해방군은 탱크와 기관총, 수개 사단 병력을 동원해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베이징(北京)의 학생과 시민을 진압했다. 이후 중국은 대단히 평화로워 보인다. 톈안먼 사태 후 1, 2년간 경기가 후퇴했지만 곧바로 경제개혁과 대외개방 조치를 취함으로써 줄곧 고속성장을 유지해 왔다.

14년이 지나 톈안먼 사태의 기억이 멀어지면서 ‘안정과 발전’의 목소리는 점차 강해지고 있다. 심지어 당시 기관총 세례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학생운동 지도자들도 중국 정부의 이런 행동에 편승하면서 중미 무역관계를 이용해 백만장자가 되기도 했다. 중국 관영 매체에 따르면 중국은 당(唐)대 이후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으며 전 세계도 중국의 성공을 칭송하고 있다.

사스의 출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톈안먼 사태를 다시 상기시켰다. 중국 정부는 몇 개월이나 전염병 발생 사실을 감췄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로 사스가 확산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미지는 톈안먼 사태 이후 가장 큰 손상을 입었다.

텅 빈 베이징 거리가 자아내는 기묘한 분위기는 톈안먼 사태 당시 100여만명의 시민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던 충격을 넘어서고 있다. 지금도 100여만명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농촌에서 상경한 노동자나 학생, 외국인들이 기차역이나 공항, 고속도로를 통해 베이징을 탈출하려는 행렬이다.

이미 100여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숨졌다. 이들의 생명을 빼앗아간 것은 전염병균이지만 그 책임은 정부의 거짓말에 있다.

정부의 거짓말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안정을 유지해야 경제발전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톈안먼 사태 당시와 똑같은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안정과 발전을 위해 중국 민중은 관리들의 부패를 참아내야 하며 거리에서 분노를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안정과 발전을 위해 중국 민중은 전염병 감염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번영하는 중국의 이미지를 거리에서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 번영에 불리한 요소들은 아무리 진실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덮어둬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극소수 사람들만이 걱정할 뿐이다. 중국 최대 경제발전 지역의 하나인 광둥(廣東)성은 올 초 3개월 동안 이 같은 논리를 충실히 관철시켰다. 사스의 창궐로 공황 상태에 빠졌으나 지방 지도자들과 관영 언론들은 이를 유언비어라고 일축했다.

심지어 경찰은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의 마스크를 강제로 벗겨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정부를 믿지 못한다는 표시일 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놀라 달아나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대외경제 의존도가 60%가 넘는 광둥성에서 외국인들이 탈출하는 것은 재신(財神)이 달아나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중국 최고 지도층도 위생부장을 통해 외국인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유학과 여행을 해도 안전을 보증할 수 있다고 발표토록 했다. 그 결과 광둥성에서 처음 발생한 사스 병균은 전 세계로 번졌다. 결국 중국 정부의 거짓말이 인민해방군의 탱크보다 더 큰 피해를 가져왔다. 14년 전 베이징에서는 100여명의 시민이 숨졌지만 이번에는 전 세계에서 500여명이 희생됐다.

이것이 바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겠다고 선언한 집권당과 정부의 행동이다. 14년 전 중국 인민들은 당과 정부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겠다면 언론의 자유와 정부 선택의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 정부의 대답은 총알이었다.

사스는 중국과 전 세계에 또다시 도전하고 있다. 생명과 경제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다. 화려한 거짓말과 잔혹한 진실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톈안먼 사태와 사스는 인민들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국가제도를 결정할 수 없다면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더라도 죽음에 이르는 길을 닦는 것과 같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우궈광 홍콩 중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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