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화성으로 간 사나이'…'동화속 사랑' 수몰되다

  • 입력 2003년 5월 8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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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여자만 사랑한 남자의 순정을 그린 멜로 ‘화성으로 간 사나이’ .사진제공 청어람
평생 한 여자만 사랑한 남자의 순정을 그린 멜로 ‘화성으로 간 사나이’ .사진제공 청어람
물에 잠긴 마을처럼 잃어버린 터전의 아득함을 절절하게 상징하는 이미지가 또 있을까.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수몰지구, 손으로 쓴 편지, 동화 같은 공간, 순정 등의 모티브를 통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련한 정서를 환기시키는 영화다.

돌아가신 아빠가 화성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믿는 소녀 소희는 화성의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 소희를 좋아하는 이웃집 소년 승재는 소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마치 화성에서 온 것처럼, 대신 답장을 써 보낸다. 그런 승재를 무척 따르던 소희는 어느 날 서울로 전학을 간다.

17년 후. 고향 마을에서 집배원이 된 승재 (신하균)는 여전히 소희를 잊지 못한다. 마을이 수몰지구로 지정돼 뒤숭숭하지만 그는 별 관심이 없다.

할머니를 찾아 고향 마을에 온 소희(김희선)에게 자신의 순정을 표현하고, 서울로 돌아간 소희에게 매일 편지를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소희로부터 응답이 없자 승재는 서울에 찾아가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소희에겐 그의 순정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이미 물에 잠겨버린 마을의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듯 시작되는 이 영화는 지난날을 회상하는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아름답고 순수했던 과거에 대한 추억과 향수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는 떠나야 할 때 떠날 줄을 모르고 기억 속에 살기를 고집하는 남자 승재가 있다.

이 영화는 21세기의 ‘움직이는 사랑’ 대신 맹목적이고 미련한 사랑과 함께 과거에 묻혀버리는 쪽을 선택하는 승재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뛰어넘는 진정성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착하고 예쁜 멜로, 동화 같은 이미지의 창출에 무리하게 집중하다보니 그 ‘진심’이 깊이 와닿지 않는다. 승재의 순정을 제외한 모든 소재가 그저 배경에 그치고 만 것도 아쉽다. 도시와 시골,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등의 대립항은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수몰지구의 스산함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1년 뒤를 그린 에필로그는 없어도 무방한 사족일 듯.

영화가 평범하고 심심한 식단처럼 밋밋하게 느껴지는데는 배우들의 연기탓도 있다. 김희선은 어떤 장면에서든 ‘소희’가 아니라 ‘김희선’으로만 보인다.

승재를 짝사랑하는 약국 딸 역할의 박소현, 승재 동생 역할의 김인권 등 조연들이 그나마 생동감이 있게 보인다. ‘동감’으로 데뷔한 김정권 감독의 두 번째 영화. 12세이상 관람가. 15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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