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박관용/'원내 정당화' 성공의 조건

  • 입력 2003년 3월 13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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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회는 두 곳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나는 정부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이다. 민주화의 진행으로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권위주의 시절 국회를 정부의 시녀 혹은 장식물처럼 대하던 일은 거의 사라졌다. 대통령비서실에서 정무수석비서관도 아닌 비서관이 국회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안건을 빨리 통과시키라고 했던 것도 이제 옛날 얘기가 됐다.

그러나 정당으로부터의 국회 독립은 아직 요원한 것 같다. 국회 밖에 있는 각 당 수뇌부의 한마디에 국회가 파행됐다가 정상화됐다가 한다.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이면서 정당인인 ‘이중적 신분’이지만 정당인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국회는 정당보다 앞서는 것 ▼

국회의원이 정당보다 국회 소속이라는 입장에서 행동한다면 여야 관계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대표로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같은 배를 탄 동지적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지금처럼 사사건건 여야가 대립하는 상황은 개선될 것이다.

원내 정당화 논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당 내부의 자체적 노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36년간 정당에 몸담았고 그중 23년을 국회의원으로 지낸 경험을 토대로 원내 정당화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국회의원이 중앙당 당직을 맡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당직을 국회직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 최고위원 사무총장 등 당직을 우선시하고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는 당직을 갖지 못한 중진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영향력 있는 중진들이 중앙당에 포진한 채 주요 정책과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의원들은 그 결정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국회가 국회의원들의 양심과 판단이 아니라 당 지도부의 결정에 종속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중앙당의 구성과 운영은 원외인사에게 주로 맡기고, 의원들은 원내로 들어가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공천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 구도에서 공천이 곧 당선인 곳이 많기 때문에 공천권은 정치인에게 일종의 생사여탈권이다. 공천을 준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고, 앞으로 공천을 줄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요즘 각 당에서 거론되고 있는 상향식 공천제는 적극 검토할 만한 대안이다. 다만 우리 현실에 맞추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무조건 상향식으로 하면 기득권을 가진 기성 정치인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지고 정치 신인들의 진입이 너무 어려워진다. 절충이 모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셋째, 당 주요 기구와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재편이 있어야 한다.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를 수뇌부 모임이 아니라 의원들의 총의를 결집할 수 있는 의원총회로 바꾸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대변인 제도 개선은 더 시급하다. 대변인은 정당이 아니라 국회에 있어야 한다. 대변인이 10여 명의 거대 부대변인단과 함께 당에 상주하면서 많을 때는 하루 수십 건의 논평을 쏟아내는 현행 제도는 불필요한 정쟁과 말싸움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새로 대변인이 되면 서로 점잖게 싸우자고 ‘신사협정’을 맺는 일이 적지 않았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사람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국회보다 정당의 일에 관심을 훨씬 더 많이 갖는 것도 현행 대변인 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공천방식-黨기능 수술해야 ▼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아예 중앙당사를 없애고 몽땅 국회로 옮기자는 혁신적인 안부터 정책기능 등 가능한 것부터 먼저 하자는 현실론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국회의장이 되면서 국회를 정치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가져오겠다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 곧 이는 원내 정당화와 같은 얘기다. 국회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정당의 국회 진입을 대환영한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빌려 밝혀 둔다.

박관용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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