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세필/‘치료용 배아복제’는 허용해야

  • 입력 2003년 3월 7일 2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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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복제인간이 태어났다고 해서 전 세계가 경천동지하더니 이제 그 여진은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던져주었다. 진위 를 떠나 넘지 말아야 할 생명공학의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매달려온 의학 및 기초생명과학의 수많은 연구자들은 먼저 ‘인간복제 아기 탄생’이 불러일으킬 사회적 파장이 자칫 생명과학이 진정 추구해야 할 연구 방향까지 막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인간복제는 막아야 하지만▼

생명공학자들은 복제인간 탄생이 아니라 ‘치료용 배아복제’를 통해 난치병을 치료하고자 한다.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는 인간에게 있어 210개 이상의 장기로 발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원시세포로서 일명 ‘만능세포’로 불린다. 따라서 치매와 파킨슨병, 당뇨병 등 수 많은 난치병들을 세포 차원에서 치료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대안인 것이다. 예컨대 당뇨병의 경우 지금까지는 뇌사자가 기증한 췌장으로 바꿔 끼워야만 완치가 가능했고 이 경우에도 거부반응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줄기세포로 만든 췌장세포를 이식함으로써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배아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신선 배아를 이용하는 방법, 폐기처분될 냉동잔여 배아를 녹여 이용하는 방법, 인간 체세포의 핵을 핵이 제거된 인간 난자에 이식하는 동종(同種)간 핵이식 기술, 동물 난자에 이식하는 이종(異種)간 핵이식 기술이 그것들이다. 신선 혹은 냉동잔여 배아에서 얻어진 줄기세포는 윤리적인 면에서 좀 더 자유스럽지만 환자에게 이식하면 면역거부 반응이 생길 수 있다. 반면 환자 자신의 체세포 핵을 인간 난자에 이식하는 동종간 핵이식 기술의 경우 복제된 배아에서 얻어진 줄기세포는 자신의 유전물질을 거의 완벽하게 갖고 있어 환자 본인에게 이식했을 때 면역거부 반응이 거의 없는 치료용 세포를 얻을 수 있는 치료법으로 모든 과학자가 꿈꾸고 있는 연구 분야다.

국내 처음으로 이미 수년 전에 폐기처분될 냉동잔여 배아에서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줄기세포를 만들어 미국 국립보건원에 등록한 바 있는 필자까지도 치료용 배아복제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엄청난 의학적, 의료적 효용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많은 인간 난자가 필요한 것이 동종간 핵이식 기술의 문제점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현재 찬반 양론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종간 핵이식 기술이다. 가장 큰 반대논리는 ‘반수반인(半獸半人)’ 탄생의 우려다.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개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묵은 고정관념의 산물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종간 핵치환으로 만들어진 복제배아는 설령 악의적 목적으로 자궁에 이식하더라도 개체발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이종간 핵이식 기술 수준은 이미 선진국과 겨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비등하는 반대여론 때문에 허용 여부가 아직까지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영국은 이미 치료용 배아복제 연구를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 역시 폐기처분될 냉동잔여 배아의 연구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도 영국과 미국이 우리보다 윤리적으로 뒤떨어졌다고 생각지 않는다. 빠르게 발전해 온 생명공학의 흐름에 발맞춰 난치병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호함은 물론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며칠 전 새로 취임한 과학기술부 장관은 이공계 학생의 역량을 강화하고 과학기술인의 처우와 사기 진작을 위해 새 정부가 어느 때보다도 과학기술 진흥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목표를 갖고 있다면서 청와대에 과학기술 중심 사회 구축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설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 행정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진정한 의미의 사기 진작은 정부가 배아복제에 대한 국민의 오해와 두려움을 풀어주고 법적, 제도적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떳떳하게 연구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생명공학 연구 옥석 구분을▼

치료용 배아복제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의술이라면 인간복제는 현재 기술상 무모한 실험에 불과하다. 배아를 둘러싼 옥석은 반드시 가려져야 한다.

체세포를 이용한 생명체 복제술을 보유한 우리나라에서도 복제인간의 출현 가능성은 예외일 수 없다. 각계 각층의 좀 더 깊이있는 논의를 거쳐 인간복제 연구는 정부 차원에서 엄격하게 금지해야 한다. 그러나 치료용 배아복제 기술을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는 제도권 안에서 집중적인 연구가 떳떳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새로운 법안 마련이 시급히 요구된다.

박세필 마리아병원 생명공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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