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클래식'… 진짜 사랑은 이런것

  • 입력 2003년 1월 23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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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래식’ 사진제공 젊은기획

영화 ‘클래식’ 사진제공 젊은기획

곽재용 감독은 멜로를 맛깔스럽게 요리하는 재주가 있다. 그것이 21세기 신식 연인의 엽기적인 사랑법이든, 갈래머리 여고생의 1960년대 구식 사랑법이든.

영화 ‘클래식’은 그의 2000년작 ‘엽기적인 그녀’로부터 30여년 전의 세월로 돌아간 시점의 사랑을 다뤘다. 제목처럼 고전적 멜로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시대를 관통하는 순수한 사랑의 동경을 부각시켜 인스턴트식 사랑에 익숙한 신세대 관객과의 호흡을 꾀한다.

대학생 지혜(손예진)는 연극반 상민(조인성)을 좋아하나 친구 수경이 먼저 좋아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통에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지혜는 수경이 상민에게 보낼 편지를 대필하면서 가슴앓이를 하고 점점 상민을 멀리하려 한다.

한편,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 주희(손예진·1인 2역)와 살고 있는 지혜는 문득 엄마의 젊은 시절 일기장에서 첫사랑 준하(조승우)의 존재를 알게 되고 상민과 묘한 일치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영화의 미덕은 코미디를 양념삼아 멜로라는 주재료의 맛을 살려낸 데 있다. 주희와 준하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은 유치하지만 오히려 미소를 자아낸다. 고교 시절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을 때, 주체할 수 없는 들뜬 감정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내면서도 극 전체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정확히 맺고 끊는 감독의 여유가 돋보인다.

그러나 후반 40분, 영화는 갑자기 신파로 경도되며 힘을 잃는다. 한참의 세월이 흐르고 주희는 준하를 다시 만나지만 그가 월남전에서 자기가 준 사랑의 정표인 목걸이를 찾으려다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곧 준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고, 주희와 결혼한 태수도 죽는다.

이때부터 영화 속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지만 관객에겐 그다지 어필하지 못한다. 또 1시간반가량을 에피소드 나열에 초점을 맞추느라 후반에는 스토리 전개가 급하다. 상민의 정체가 드러나는 마지막 부분도 그동안 복선이 미약해 일방적인 폭로로 느껴질 뿐 별 감흥을 자아내지 못한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해준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배우’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어색하게 연기한다는 그간의 혹평을 넘어섰다. 극 중 로큰롤 음악에 맞춰 어정쩡한 춤을 선보이는 그의 연기는 배역에 몰입했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지만 영화의 80%를 과거 시점이 차지해 60년, 70년대 교복 세대인 중장년 영화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차태현과 전지현이 코믹 스토리로 패러디했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는 이번 영화에선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서정적 분위기를 풍긴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더 스윙잉 블루진스’, ‘히피 히피 셰이크’ 등 1960∼70년대 음악도 흥을 돋운다. 12세 이상 관람가. 30일 개봉.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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