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대학]지방대학 "입학정원 채우기도 힘들어"

입력 2002-01-21 18:40수정 2009-09-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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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조교수 A씨는 최근 서울 모 대학의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겼다. 부교수 승진을 앞둔 A씨가 직급을 낮추면서까지 서울로 자리를 옮긴 것은 지방대의 열악한 교육 여건 때문이었다. A씨는 “지방대의 교육 여건과 연구비 수준이 형편 없어 학자로서의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며 “게다가 지방대를 얕잡아 보는 사회 풍토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교수와 학생 등 고급 두뇌의 외면과 졸업생 취업난 등이 겹치면서 지방대의 위기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가 된지 오래다. 전체 대학생 정원의 65.9%를 차지하는 지방대의 위기는 지방대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지난해 경북 D대는 학장까지 지낸 교수 등 중진급 교수 4명이 한꺼번에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학사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방 C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김모씨(27)는 “입학 후 과 교수 5명 중 4명이 서울로 떠났다”며 “교수마저 지방대를 버리는 마당에 학생들이라고 의욕이 있겠느냐”고 허탈해했다.

지난해 경북 D대는 학장까지 지낸 교수 등 중진급 교수 4명이 한꺼번에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학사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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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C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김모씨(27)는 “입학 후 과 교수 5명 중 4명이 서울로 떠났다”며 “교수마저 지방대를 버리는 마당에 학생들이라고 의욕이 있겠느냐”고 허탈해했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3월 전국 125개 대학의 교수 신규임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자리를 옮긴 교수 130명 가운데 51명이 지방에서 서울의 대학으로 옮겼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동한 교수는 4명 뿐이었다.

지방대학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학생 수 부족이다. 지난해 전국의 대학들은 1만2897명의 학생을 충원하지 못했는데 86.5%가 지방대에서 충원하지 못한 것이다.

95년 개교한 전남 H대는 3년 전 학생 부족 등으로 교육부의 폐쇄 계고를 받은 뒤 신입생 정원을 18개과 1640명에서 12개과 640명으로 줄였다. 지난해에는 두차례나 추가 모집을 했지만 여전히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경북 A대는 지난해 모집정원 1627명의 절반에 가까운 834명, 전남 B대는 모집 정원 2234명 중 1004명을 채우지 못했다.

대학이 앉아서 학생을 받던 시대는 끝났다. 2003학년도부터는 대학 모집정원보다 고교 졸업 예정자가 적어 대학이 학생을 찾아 나서야 할 형편이다. 특히 지방대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생 부족은 대학 경영난과 교육여건 악화로 이어져 대학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전북 H대 관계자는 “98년 이후 800∼900명의 신입생 입학 정원 중 500∼600명만 확보해 결원이 30∼50%나 됐다”며 “최근 3년간 교수 신규 채용은 물론이고 학생과 교직원의 복지 및 후생에 대한 투자가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수도권·지방대 취업률 비교
대 학취업률
서울대44.4%
서강대43.1%
경희대26.4%
한양대24.3%
경북대16.9%
부산대19.1%
전남대23.6%
충남대16.2%

또 수도권대학의 편입학 확대도 지방대 학생이 빠져나가는 원인 중의 하나로 편입학 시즌만 되면 학생들이 10∼30%씩 빠져나가는 대학도 적지 않다. 지방대에 그냥 있다가는 졸업을 해도 취업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수도권 대학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수도권 대학 편입생의 60% 이상이 지방대 출신이다.

지난해 11월 말 졸업 예정자의 취업률을 조사한 결과 서울대 44.4%, 서강대 43.1%, 경희대 26.4%, 한양대 24.3% 등이었지만 지방대의 경우 경북대 16.9%, 부산대 19.1%, 전남대 23.6%, 충남대 16.2% 등으로 대부분 10%선이었으며 그나마 취업의 질은 훨씬 낮았다.

충남 J대 4학년 이모씨(28)는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추천서 받기도 어렵고 서류전형 단계에서 대부분 탈락한다”며 “입사 원서를 30번도 넘게 냈지만 한곳에서도 연락이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국립 K대 취업담당자는 “지난해 한 은행의 인터넷 입사원서 접수에서 우리 대학은 인증번호조차 부여되지 않아 학생들이 지원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토연구원 박양호(朴良浩) 박사는 “영국 등 선진국처럼 국가 차원에서 지방대생을 채용하는 지역 기업에 임금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고용체인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대들도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97년 외환외기 당시 대학간 통폐합 논의가 활발했지만 성사된 것은 공주대와 공주문화대 통합이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96년 일정 요건만 갖추면 설립을 인정해주는 대학준칙주의가 시행된 뒤 26개대가 새로 설립돼 정부의 대학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000년 2월 국무회의에서 지방대 육성대책을 지시한 뒤 교육부 는 위원회를 구성해 지방대 출신자 고용을 권장하는 내용의 ‘지방대 육성 특별법’ 제정 등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법안은 국회에서의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교육부는 지방대 육성예산 500억원을 배정한 것이 고작이다.

대구대 윤덕홍(尹德弘) 총장은 “국가 세출의 5%를 지방대 육성기금으로 조성하고 공무원 시험 등 국가시험에서 지방대생을 50% 선발하는 ‘인재 할당제’ 등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인수(高仁洙)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은 “인재 할당제는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기업에는 또 하나의 규제”라며 “지방대 문제의 해결 방법은 특성화로 실력을 인정받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윤정일(尹正一·교육학) 교수는 “형평성 논란이 있는 인재 할당제보다 지방자치단체의 지방대 지원을 의무화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미국 스탠퍼드대와 실리콘 밸리처럼 대학과 지역경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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