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담론]카다피의 "서양은 惡 우리는 善"

  • 입력 1999년 9월 6일 18시 34분


‘테러범’ 카다피에 대해 미국은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 대한 공습과 카다피 암살시도로 ‘응징’한다. 그러나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는 목청을 높여 ‘반항’한다. 국제사회의 고아 격인 가다피가 6일 아프리카단결기구(OAU)정상회담을 주최하며 이 지역 맹주를 꿈꾸는 것은 ‘테러리스트 카다피’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카다피적 것’이 ‘세계적 그 무엇’과 흐름을 같이 하는 면이 있을 법하다. ‘탈이분법’과 문화다원주의가 그 중 하나다.

▽내부결속 메커니즘〓가수 조PD는 뭔가에 대해 욕설을 퍼부었다. 욕설문화는 분명 우리사회의 주류가 아니다. ‘주류사회’는 조PD에게 비판과 제재를 가해 ‘조PD 정서’를 말살하려 했다. 그럴수록 ‘추종자들’은 결속했다. 조PD는 건재했고 추종자들은 ‘조PD 안에서’ 안심했다.

리비아의 내부결속도 외부의 ‘탄압’의 강도에 비례했다. 조PD와 카다피는 적어도 구성원으로부터는 지지를 받는다. 이들은 나름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했지만 주류문화에 대한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류의 타깃이 되지 않는다면 조PD는 이미 ‘스타 조PD’가 아니다.

할리우드는 사랑영화보다 ‘마릴린 몬로’를, 액션영화보다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만들었다. 스타의존시스템이다. 스타시스템에 내재한 부조리는 철저히 감춰진다. 예를 들면 여배우가 얼마나 많은 ‘육체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지, 마약 범죄와 어떻게 엮여 돌아가는지…. ‘독재 스타’도 마찬가지다. 독재와 부조리는 덮어진다. 추종자들은 스타성에 매료된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주적(主敵)’의 스타화는 편리한 방법이다. ‘스타’에 특정이미지를 실어 놓으면 타깃이 확실해져 복잡미묘한 속사정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조PD와 카다피가 사회에‘공존’하는 이유다.‘주류’ 내부의 좌우이념논쟁이나 이익다툼과는 사뭇 다른 공존의 양상이다.

▽악의 돌연변이〓“서양과 우리의 싸움은 선과 악의 싸움이다.” 서방과 카다피는 서로 자신은 선, 상대는 악으로 규정한다. 이분법은 모순 투성이인 인간의 편리한 사고방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데카르트의 정신과 육체, 주역(周易)의 양(陽)과 음(陰), 성리학의 이(理)와 기(氣). 다양한 현상을 두 요소의 배합으로 풀이하는 이원론은 유용한 설명틀이다. 여기에 가치판단이 결합하면 ‘형상·정신·양·이〓선’이고 ‘질료·육체·음·기〓악’이 된다.

카다피는 ‘자본주의〓선’‘공산주의〓악’이라는 이분법적 냉전구도 속에서 ‘자본주의〓선’에 상대되는 ‘카다피〓악’이라는 ‘악의 돌연변이’로 자리매김했다. 탈 이분법의 산물이면서 스스로 선악대결을 외친다는 점에서 그는 이분법과 탈이분법의 중간에 서 있다. 그가 저서 ‘그린 북’에서 펼친 ‘제3보편이론’은 서구에서 만들어진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 핵심은 △신의 계시 △대중의 통치 △자연섭리에 따른 남녀역할분담 △흑인의 세계지배 등이다.

그의 이론은 이미 ‘서구문화의 기준만으로 다른 문화를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입장에 충실하다.

▽해체는 고양이처럼 다가온다〓프랑스의 데리다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이분법적 사고로는 현 사회를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면서 ‘모든 것은 관계속에서 상황에 따라 언제나 새롭게 읽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분법의 안정된 긴장’이 깨지면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변수를 생각해야 한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다시 이분법적 구도를 이룰 거대 이데올로기를 기다린다. 이 틈에 등장한 것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탈냉전시대의 미국은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이라는 문명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상정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또다른 ‘마녀사냥 기획’이란 비판도 받고 있는 그의 이론은 서양중심적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양은 우월하고 평화적’이며 ‘동양은 열등하고 야만적’이라는 서양식 이분법을 비판한 바 있다.

어쨌거나 “해체는 고양이처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이분법적인 거대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갔고 문화다원론이 큰 흐름을 잡아가고 있다. 조PD도, 카다피도 사회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한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의 해체다.

영국의 사회진화론자 스펜서는 ‘같은 종의 개체와 그 변종들 사이에 생존경쟁이 가장 심하다’는 다윈의 이론을 인간사회에 적용하려 했다. 그러나 인간은 이와 달리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는 사회체제를 만들고자 노력해 왔다. 그리고 공존의 열쇠는 다양한 관계에서의 ‘상호인정’이다.

<철학박사 김형찬기자> khc@donga.com

▼문화다원주의

문화인류학에 대한 연구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해 피식민문화를 연구한 데서 시작됐다. 따라서 과거 ‘문화 평가’의 기준은 서구문화였고 식민문화가 서구문화에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 ‘문화’와 ‘야만’으로 구분됐다.

그러나 서구문화의 잣대로 전세계 문화를 가늠하는 데 대한 반성이 일었다. 일부 문화인류학자들이 이른바 ‘미개민족’의 문화도 해당 지역과 민족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각 문화는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문화다원주의는 80년대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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