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을 벗긴다①]「고비용 저효율」만연 국민부담 가중

  • 입력 1998년 6월 17일 19시 13분


적지않은 공기업들이 민간부문보다 훨씬 심각한 ‘고비용 저효율’로 국민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다. 방만한 경영, 인사 난맥, 무사안일, 궁극적인 주인인 국민을 무시한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우리 경제사회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17일 본보가 관계기관으로부터 입수한 공기업에 관한 조사자료를 보면 공기업의 속사정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방만한 경영〓전화번호부주식회사가 작년 7월 민영화된 뒤 전화번호부 제작단가가 63.7% 줄었다.

한국감정원의 44개 지점 중 21개 지점은 적자다. 그러나 25개 지점에는 부지점장이 있다.

한국석유개발공사는 건설사무소와 관리사무소란 이름으로 동일 지역에 2개의 현장사무소를 두고 있다.

한국전력 인천화력발전소는 1천1백50㎿ 용량에 4백24명이 근무하고 있다. 민간기업인 한화에너지는 비슷한 용량에 2백95명이 근무중이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수송시설의 70%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점유율은 29%에 불과하다.

전국에 관광관련 전문학과를 두고 있는 대학과 전문대가 80개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관광공사는 관광통역원과 호텔종사원 양성을 위한 자체 교육원을 서울과 경주에 두고 있다.

한국조폐공사의 작년 지폐 납품단가는 장당 78.89원이었다. 캐나다는 60.6원, 독일은 76.5원이다. 지폐 제조단가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조폐공사가 45%, 캐나다와 독일이 각각 34%와 32%.

작년 대한석탄공사의 1인당 부가가치액은 4천5백만원이었다. 민영인 삼척탄좌와 경동탄광은 각각 5천6백만원과 6천8백만원이었다.

석공의 급여수준은 민영탄광의 160%선으로 나타났다. 부가가치액 가운데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석공이 81%로 삼척탄좌(55%)나 경동탄광(69%)보다 높다.

석공은 작년 8백3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고 누적결손액이 4천4백억원에 이르렀다. 정부는 석공에 연간 수천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예산은 세금에서 나온다.

“겉으로 엄청난 이익을 내는 공기업도 많지만 이익의 대부분은 독점에 따른 것이다. 경쟁에 부칠 경우 이같은 이윤은 기대하기 어렵다.”(기획예산위 관계자)

▼후한 복지, 느슨한 조직〓6개월 이상 근무는 근속기간을 1년으로 절상하고 6개월 미만은 6개월로 절상해 준다. 기업은행 토지공사 주택공사 등 상당수의 공기업이 임직원 퇴직금 산정시 적용하는 기준. 근로기준법은 이처럼 후하지 않다.

조폐공사는 올해 명예퇴직자 3백20명중 2백21명에 대해 규정에 따른 퇴직금에다 가산금을 더 얹어 주었다. 이에 따라 평균 가산금이 규정 퇴직금의 90%에 이르렀다.

산업은행은 93∼96년중 2천8백60억원의 급여성 경비를 지출했다. 정부 지침보다 6백14억원 초과.

이 은행에 대해 정부가 지침으로 내린 총재 급여인상률은 23.4%였지만 실제는 65.5%나 초과했다. 토지공사 사장의 경우는 50.9%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자원공사는 무이자로 1인당 2천만원까지 주택구입자금을 융자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조폐공사와 통신공사는 2%로, 담배인삼공사는 4%로 2천만원까지 융자해준다.

평균 유급휴가일수는 도로공사가 연간 55일, 주택공사가 54일, 석유개발공사와 관광공사가 52일 등으로 조사됐다. 민간기업 평균은 44일.

▼재벌 흉내내기〓자회사를 마구 설립해 엄청난 적자를 내는 사례도 많다. 자회사 설립목적도 모회사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관계당국자는 지적했다.

도로공사는 96년 자회사인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설립해 민간에 위탁했던 통신시설 유지보수업무를 흡수했다.

도로공사는 자회사 설립의 근거로 민간위탁시 3백14명의 인원이 필요하지만 공단을 설립하면 2백74명으로 줄일 수 있음을 들었다. 하지만 민간업체에 위탁할 때 필요한 인력은 2백3명으로 나타났다.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은 별정직을 합쳐 2백27명으로 운영돼 11억원을 낭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공단의 임원 5명 전원과 직원의 30%는 도로공사 출신이었다.

도로공사는 또다른 자회사인 고속도로관리공단에 수의계약하면서 민간업체와 계약할 때보다 12.4% 비싸게 계약, 90억원을 낭비한 사례가 있다.

고속도로관리공단 임원 7명 전원은 도로공사 출신이었다.

한국통신은 자회사인 한국통신카드에 전화카드 구입가격을 표준원가계산에 의하지 않고 실제 소요된 원가를 모두 보상하는 방식으로 계산했다. 이에 따라 연간 34억원을 낭비했다고 관계당국은 지적했다. 이 회사는 사장 등 임원 4명과 직원의 32%가 한국통신 출신으로 밝혀졌다.

관계부처에 따르면 주택공사 도로공사 등 13개 정부투자기관의 30개 자회사는 지난해 3조5천2백11억원의 매출에 2백8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모기업의 편법지원에다 독과점성을 감안하면 좋지 않은 성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담배인삼공사 포항제철 등 13개 정부출자기관의 52개 자회사는 12조1천2백57억원의 매출에 2천2백6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감사원 관계자는 “모든 공기업에 대해 자회사를 포함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본 결과 포항제철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공기업이 흑자 발표와는 달리 엄청난 적자에 허덕이는 속빈 강정 상태”라고 밝혔다.

〈임규진·박현진기자〉mhjh22@donga.com

▼공기업은 지금…▼

공기업의 ‘고비용 저효율’은 결국 국민부담으로 넘어간다.

“석탄공사의 경우 정부예산에서 연간 수천억원을 지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방만한 경영을 일삼아 결국 국민세금만 축내고 있다.” (박종구·朴鍾九 기획예산위 공공관리단장)

다수 국민은 일부 공기업과 그 임직원을 살찌우기 위해 주머니를 더 털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산업 전체의 경쟁력 저하에 따른 부담까지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공기업 개혁은 강한 저항을 받고 있다.

새 정부 들어 대부분의 공기업 노조들이 기획예산위를 찾아가 ‘사람 죽이는 구조조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정부투자기관노조연맹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생존권 차원의 투쟁’을 공언하고 있다.

경영진들도 “우리 회사는 국민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니 특별히 취급해달라”고 주문한다.

‘지금대로 살아남기 위한’ 공기업들의 로비는 정치인 등 실력자 동원을 포함해 집요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개혁업무에 관여하고 있는 한 인사의 증언이다.

정부의 일부 관리도 이들에 동조할 뿐 아니라 이들의 저항을 부추긴다. 산업자원부의 모 과장은 요즘 ‘일부 공기업의 해외매각에 신중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관료와 공기업의 공생관계는 뿌리가 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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