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건희]빛나는 불협화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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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여성가족부는 김희정 전 장관 시절 틈만 나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했다. 피해 실상을 인류사에 낱낱이 기록해 여성과 어린이가 다시는 그처럼 참혹한 성범죄를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여가부의 정체성에 걸맞은 숭고하고 현실적인 목표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직후 여가부의 태도가 달라졌다. 한 여성단체의 유네스코 등재 사업을 지원하기로 해놓고 막판에 이를 백지화했다. 강은희 현 장관은 취임식에서 관련 언급을 피했다. 취임사에 ‘∼해야 한다’는 표현이 23차례나 등장했지만 위안부 기록 문제에 대해선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는 모호한 표현만 썼다. 여가부가 불과 한 달 전의 자신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여가부는 지난달 기획재정부에 2017년도 예산을 요구하며 유네스코 등재 사업 예산 4억4000만 원을 자체 삭감해 버렸다. 이 사업을 2년 가까이 지켜봐 온 여가부 관계자에게 공무원이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의견을 물었다. 망설이던 이 관계자는 “기록유산으로 남기는 건 해야죠. 내년 예산도 (책정될 수 있도록) 남은 시간 동안 해 봐야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틀 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 장관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민간이 등재를 추진하고 있으니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에도 정부 차원의 지원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 여가부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만 달랐던 게 아니라 ‘겉과 속’도 달랐다.

정부는 한일 간에 유네스코 등재 사업을 보류하자는 등의 ‘이면 합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사실이라면 여가부는 원래 추진해온 대로 유네스코 등재 사업을 지원해 진정성을 입증하면 된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에 심사 제도를 바꾸라며 대놓고 압력을 넣는데 한국 정부만 합의하지도 않은 내용 때문에 눈치를 볼 필요가 있나.

많은 사람들은 강 장관이 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여당 위원들이 전부 회의실을 박차고 나간 뒤에도 혼자 남아 야당 위원들을 설득하려 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지금 강 장관은 여가부가 걸어온 행적이나 실무진의 목소리를 외면할 게 아니라 특기를 발휘해 필요하면 외교부나 일본 정부와도 담판을 지어야 할 위치에 있다. 각 부처가 제 기능을 할 때 나오는 불협화음은 건전한 긴장 관계의 증거다. 그게 여성 인권을 상징하는 부처의 수장이 내야 할 진짜 불협화음 아닌가.

필자가 2011년 12월 1000번째 수요집회를 앞두고 김복동 할머니(90)를 만났을 때 그는 “한쪽 눈이라도 성할 때 일본이 ‘할매, 이제 고마 화 푸소, 미안했소’라는 걸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4년여가 지난 지금 김 할머니는 남은 눈마저 실명 위기라고 한다. 10일 유희남 할머니(87)가 별세하면서 위안부 생존자는 40명으로 줄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여성가족부#위안부#유네스코 등재 사업#김희정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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