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갈등’ 이렇게 풀자/2부]<2>대학 재정운영 투명성-신뢰 확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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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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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6곳서 부풀린 예산 8300억… 11만명 등록금 맞먹어

《 대학 등록금 인하 논의와 함께 불투명한 회계로 신뢰를 쌓지 못한 대학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지원을 한다고 해도 대학이 스스로 체질과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세금만 낭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과 회계 투명화, 신뢰 회복은 대학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
○ 불투명한 재정, 부풀리기 관행

지난 수십 년간 대학 등록금은 계속 올랐지만 대학의 재정 운영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교육 관련 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됨에 따라 대학 정보공시제가 시행된 것이 2008년이었다. 대학들은 정보공시에 대해 “대학을 서열화한다”며 반발했다.

정보 공개가 본격 시행된 이후에도 학생과 학부모들은 부실한 공개에 불만을 토해냈다. 하지만 대학들은 구시대의 관행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일부 공시 내용을 입력하지 않거나 틀린 내용이 적지 않아 대학 간에도 “수치를 엉터리로 올린 대학이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이 입력한 부실한 자료 때문에 장학금 지급률 공개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정보 공시 항목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대학의 주요 수입인 등록금과 적립금 회계 내용도 구분되지 않은 상황이다. 교과부는 올해 8월 이후부터 등록금과 적립금을 구분해 공개하도록 할 계획이다.

재정 운영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학들의 예산 부풀리기는 관행처럼 이뤄져왔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정원 1만 명 이상인 수도권 사립대 26곳의 2009회계연도 예·결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입 및 지출에서 부풀린 금액은 8318억 원에 달했다. 사립대 1인당 평균 등록금을 769만 원으로 계산할 때 부풀린 돈은 약 10만8000명의 1년간 등록금에 해당하는 규모다.

수입은 적게, 지출은 많게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전형적인 분식회계 수법이었다. 대학들이 실제보다 줄인 수입은 등록금 595억 원, 교육 외 수입 626억 원 등 총 2668억 원이었다. 또 실제보다 부풀린 지출 예산은 교직원 보수 934억 원, 연구학생경비 889억 원, 관리운영비 784억 원 등 5650억 원이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예·결산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정도로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분식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등록금 경감 이전에 대학 재정 투명성 확보가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 신뢰 잃은 대학 적립금

등록금이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대학은 ‘적립금을 풀라’는 압력을 받았다. 지금까지 대학들은 “적립금은 미래에 대한 투자비용인데 한꺼번에 등록금 인하에 쓸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등록금 인하 요구가 거세지자 대학에서도 “적립금을 활용하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적립금 중 장학적립금 비중을 높이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학들이 지금처럼 장학적립금을 운영한다면 장학적립금 비중을 높여도 실제 대학생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그리 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본보가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실과 함께 2010년 누적적립금이 많은 상위 10개 대학의 적립금 현황을 분석한 결과 대학들은 충분히 사용 가능한 장학금을 쌓아두고 있었다.

우선 10개 대학의 적립금 총액 3조2795억 원 중 장학적립금은 8.4%인 2749억 원이었다. 이 중 기부자가 원금을 보존하도록 한 ‘고정 장학적립금’은 597억 원에 불과했다. 장학적립금의 78%인 2152억 원은 ‘임의 장학적립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인데도 쓰지 않았다.

권 의원은 “장학금 명목의 적립금을 수백억 원씩 쌓아놓고 등록금만 올리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학 적립금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축적립금은 대학들이 적립금을 늘리는 주요 수단이다. 10개 대학은 건축적립금으로 2516억 원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2010년 2733억 원의 건축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실제 집행은 1851억 원만 하고 나머지는 적립금으로 돌렸다.

국립대도 사립대와 비슷하게 잉여 예산을 적립금 형태로 쌓아두고 있다. 전국 10개 거점 국립대의 2010년 예·결산 자료에 따르면 10개 대학의 잉여금 규모는 714억 원이다. 잉여금이 168억 원을 웃도는 대학도 있었다. 국립대도 사립대처럼 예산을 과다 편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르는 이유다. 권 의원은 “대학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받는 국립대가 과도한 잉여금을 쌓아놓을 필요는 없다. 교육 당국이 대학 재정 운영을 방기해 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 대학 자구(自救) 노력에도 눈총


대학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등록금 인하 필요성에 동감한다”며 “기부금 활성화와 적립금 활용 등의 자구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등록금 문제는 대학이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수도권의 A대 관계자는 “대학들이 죄인이 된 것 같은 상황”이라면서도 “해결은 결국 정치권에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B대 관계자도 “대학마다 자구 노력을 할 수 있는 정도에 차이가 크다. 대학에만 대책을 만들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학들의 자구책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대학의 재정에 대한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독고윤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급자가 경쟁을 하면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 대학이다.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비용 증가분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상황에서 대학은 기업보다 더 높은 회계 투명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교과부가 사학 재정 관리감독 업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 재정 상황을 공개하고 정보를 왜곡할 경우 벌을 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 재정 불투명한 대학, 생존 불투명해진다… TF 구성해 감사 본격화 ▼


앞으로 대학들은 재정 투명성과 신뢰도를 올리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에서는 대학 등록금 산정의 적정성을 따져보겠다는 감사원의 계획이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회계 및 재정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재정 회계 투명성도 감사 대상


감사원은 14일 ‘교육재정 배분 및 집행실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 TF는 먼저 각 대학의 등록금 및 예산 관련 자료 등을 받아 기초 현황을 분석하고 감사 전략을 짜게 된다.

감사원 관계자는 “우선 예비조사를 벌이고, 재정 부실이나 회계 부정이 심한 대학을 표본으로 선정해 본감사에 준한 감사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이번에 대학들이 스스로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게 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지금까지 스스로 투명도를 올리지 못했다면 외부 기관의 힘으로 잘못된 관행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등록금 산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회계장부를 숨기거나 조작했던 대학은 중점 감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감사의 1차 표적은 교육비 환원율로 알려졌다. 총교육비를 전체 등록금 수입으로 나눈 값인 교육비 환원율은 대학이 등록금을 받아 교육을 위해 얼마나 지출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지금까지 이 지표는 학자금대출 제한 대학 선정 등 부실 대학을 따지는 기준으로 이용됐다. 이번에는 이 지표로 대학이 등록금을 교육비로 얼마나 썼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부실 대학에는 국가보조금을 삭감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모범 대학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내놓을 방침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감사가 시작되고 대학 재정의 부정 운영과 부실 대학 현황 등이 공개되면 여론 때문에라도 자정 노력을 하지 않겠나. 등록금 경감을 위해 대학에 정부 지원이 강화되면 아무래도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풍토를 없애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재정 부실 대학은 퇴출


감사원의 방침에 대학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14일 “대교협이 등록금대책 TF를 구성했는데도 감사원에서 등록금 일괄 감사를 추진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며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등록금 문제를 모두 대학 책임으로 돌리려는 의도는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실 대학 퇴출 기류가 바뀌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13일 당정청 실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에 대학 구조조정 방안도 포함시킬 것을 한나라당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도 같은 날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강화하더라도 부실 대학에 대한 제한은 불가피하다. 부실 대학의 경영 정상화 또는 퇴출 유도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영길 대교협 회장은 “감사가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이번 감사로 대학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투명성 강화 및 대학 운영의 부실 요소를 제거하는 등 자구 노력을 구체화하겠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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