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휘는 20대, 대학 등록금]공부하러 대학와서 잡일만 하는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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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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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못쉬고 등록금 알바… 4년뒤 받는건 ‘빚’나는 졸업장

열흘째 시위 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빌딩 앞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이행 촉구’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대학생과 시민들이 “반값 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열흘째 시위 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빌딩 앞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이행 촉구’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대학생과 시민들이 “반값 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공부하러 왔는데 ‘알바’만 했습니다….”

광주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한모 씨(25)는 입학 때부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식당일은 물론이고 농산물시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는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했다. 3학년 때는 아예 휴학을 하고 광주 서구 금호지구에서 양말판매 노점상을 하다 단속에 걸리기도 했고 택시운전사로 일한 적도 있다. 한 씨는 “공부를 위해 돈을 벌었는데 정작 일하느라 무슨 공부를 했는지 별로 기억이 없다”며 “왜 아르바이트를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 학생의 본업은 ‘알바’?


대구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강지호(가명·22) 씨 역시 학업보다 아르바이트가 우선이다. 매일 오전 8시∼오후 5시 반 교내 근로장학생으로 일한다. 학교 수업은 일부러 오후 6시 이후 시작하는 강의만 골라서 듣는다. 주말에도 오전부터 10시간가량 주유소에서 일을 한다.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지만 이렇게 버는 돈은 100만 원 남짓. 학교에서 받는 돈은 80만 원이고 시급 4320원이 조금 넘는 주유소에서는 한 달 평균 30만여 원을 받는다. 차비와 책값 등 생활비를 제외하면 아무리 아껴 써도 300만 원이 넘는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조차 힘들다. 당연히 학업은 뒷전이 됐다. 일하는 틈틈이 리포트를 쓰고 강의를 복습하는 게 공부의 전부다. 집에 돌아오면 몸이 너무 피곤해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강 씨는 “취업을 하려면 남들처럼 학점과 스펙도 신경써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며 “공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인데 공부는 뒷전이고 등록금을 대기 위해 일하는 것이 주업이 됐다”고 푸념했다.

한 씨와 강 씨 같은 상황은 현재 대학가 도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올해 사립대 연간 평균 등록금은 무려 754만 원에 이르면서 대학(大學)이란 말이 무색하게 공부보다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학생이 적지 않은 것.

지난해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전국 대학생 7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38.2%(296명)에 달했다. 특히 사립대 재학생은 전체의 44%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등록금이 잠시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전남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 씨(22)는 형의 군 제대 시점에 맞춰 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김 씨는 “대학생 2명인 집은 1년 학비로만 2000만 원을 써야 한다”며 “원래 취업을 고려해 1학년을 마치는 대로 군에 입대할 계획이었으나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형과 교대로 군에 갔다오기로 했다”고 했다.

○ 등록금의 늪


등록금 고민은 학창시절로 끝나지 않는다. 대출로 등록금을 충당한 학생들은 사회 초년병 시절부터 빚 갚기에 바쁘다.

2004년 부산의 한 사립대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한 김모 씨(33)는 올해에야 등록금 족쇄에서 벗어났다. 2004년 호텔 헬스장에 트레이너로 취업한 김 씨가 받은 월급은 180만 원. 하지만 이 중 10만 원은 학자금 상환으로 고스란히 은행으로 자동이체됐다. 빠듯한 형편에 원금은커녕 6% 이자도 부담이 되다 보니 전체 학자금 800만 원을 갚는 데 7년이 걸렸다. 김 씨는 “결혼해 아이가 생긴 뒤에도 여전히 매달 등록금을 갚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내 아이도 커서 같은 고생을 할까 봐 솔직히 두려웠다”고 했다.

소위 ‘괜찮다’는 직장에 들어가도 학자금 상환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2009년 서울의 사립 K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6월 시중은행 정규직으로 취업한 윤모 씨(29)는 1400만 원의 학자금을 갚기 위해 매달 30만 원씩 은행에 내고 있다. 앞으로 꼬박 3년은 더 내야 한다. 윤 씨는 “연봉이 3500만 원으로 적은 편은 아니지만 학자금 외에도 월세와 생활비 등 고정으로 들어가는 돈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취업을 못하면 부담의 압박은 두 배가 된다. 지난해 서울의 한 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최모 씨(25)는 “아직 취업도 못했는데 학자금 상환 기한이 1년밖에 남지 않아 마음이 더 급하다”며 “취직도 안 되고, 돈은 갚아야 하고, 에라 결혼이나 하자고 생각해도 그 또한 돈 없이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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