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집트 국민 다시 거리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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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헌법’ 항의 대규모 시위… 의원들 “의사당 통제 풀어라”
“권력 민간이양 않으면 제재”… 美 원조중단 등 강경책 경고

군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군부의 새 ‘과도헌법’ 발표에 맞서 이집트 시민들이 ‘혁명 수호’를 외치며 다시 거리로 나섰다. 미국도 이집트에 대한 원조를 중단할 수도 있다며 이집트 군부를 압박했다.

18일 지난해 이집트 ‘민주화 혁명의 성지’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한 시민이 쇠사슬로 묶은 두 손을 하늘 높이 올린 채 군부를 비난하는 구호를 외쳤다. 그는 군 최고위원회(SCAF)를 “도둑들”이라고 비난하며 “쇠사슬로 묶은 손은 나와 이 나라의 절망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수십 명의 시민은 “합법성은 오직 선출된 대통령에게만 있다”고 외쳤다.

무슬림형제단과 지난해 혁명을 주도한 ‘에이프릴6 청년운동’ 등 자유주의 단체들은 19일 타흐리르 광장에서 군부에 대항하는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자유정의당(FJP) 소속 파테마 아부자이드 의원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SCAF가 민주화 혁명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 우리는 거리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며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집트의) 민주화 혁명은 ‘죽느냐 사느냐’의 중요한 순간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집트 하원의원들도 18일 군부의 ‘반(反)혁명적 결정’을 거부하고 의회건물에 대한 군의 통제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의원들은 19일부터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연좌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제1당 자유정의당과 극단이슬람주의 성향의 제2당 알누르당 소속 의원 등은 “SCAF가 새 대통령에게 권한을 이양할 때까지 연좌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해산 전 구성된 100인의 헌법제정위원회는 이날 헌법 초안 작성을 위한 첫 회의를 열어 군부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군의 법령 발표로 새로운 제헌위원회 구성을 할 권리가 군부로 이양됐기 때문에 새 헌법 제정을 둘러싼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집트 군부의 발표에 심각한 우려를 보이며 군부가 민간에 권력을 이양하지 않으면 지원 중단 등 강력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집트에 매년 10억 달러(약 1조1550억 원)에 달하는 군사원조를 해왔고, 최근 미의회는 2억5000만 달러(약 2890억 원) 규모의 경제적 지원계획을 승인했다. 빅토리아 뉼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18일 “지금 매우 중요한 시기를 거치고 있는 이집트를 전 세계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며 “SCAF가 국가적 헌신(민정 이양)을 완수함으로써 이집트 민주화에 대한 국민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총성 없는 쿠데타’로 불리는 이번 군부의 결정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아래에서 군이 누려온 이권을 되찾겠다는 시도로 분석된다. 17일 끝난 대선 결선투표에서 무슬림 세력인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만큼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주요 군 인사권과 전쟁 선포에 대한 거부권 등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버나드대 모나 엘 코바시 정치학과 교수는 “누구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군부가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혁명 이후 최대 정파로 자리 잡은 무슬림형제단이 이슬람주의적 색채가 강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점도 군의 이 같은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에릭 트라게 연구원은 군부의 조치를 “문서적 쿠데타”라며 이집트 민주화에 대해 “이제 문제는 무슬림형제단이 자유주의 세력과 연대해 대규모 시위를 벌일지 아니면 군부와 어떤 형태의 합의에 도달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과도헌법#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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