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이해 엇갈린 사드와 AIIB… 한국, 선택의 묘수 고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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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틈바구니’ 기로에 선 외교]中 ‘AIIB 한국 참여’ 압박 고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10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기존 다자국제금융기구와 보완적 관계”라며 한국의 참여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AIIB의 설립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앞으로 (AIIB 참여를 두고) 긴밀한 소통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투자를 위한 AIIB가 설립되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세계은행(WB) 등과 경쟁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아태지역 개도국들이 중국의 우산 속에 편입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의 AIIB 참여 요청에 확답을 피한 것도 미국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하지만 마냥 시간을 끌기 힘든 시점이 다가왔다. 미국의 최대 우방인 영국이 AIIB 참여를 공식화하면서 호주와 유럽 국가들마저 세계 ‘최대 큰손’인 중국의 투자를 받기 위해 AIIB 참여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 AIIB가 개도국의 돈줄이 될 수 있는 만큼 이들 국가의 인프라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라도 AIIB 참여가 필요하다. AIIB 창립회원국 가입 신청은 이달 말 마감된다.

○ 탄력 받은 AIIB

스티븐 스프랏 영국 개발학연구소 연구원은 14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영국)이 대담하게도 AIIB에 가입했다. 다른 국가들이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국과 호주가 가입할 것이라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조 호키 호주 재무장관은 전날 “그동안 요구해온 AIIB의 지배구조 문제가 분명하게 개선됐다”며 “AIIB에 참여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등 유럽 국가도 AIIB 합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2013년 10월 아시아 순방 중 공식 제안한 AIIB는 올해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초기 자본금은 500억 달러로 현재 중국을 포함해 영국 인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28개국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 고민 커지는 한국

중국은 한국이 AIIB의 창립멤버로 참여하면 △투표권을 차등 부여하고 △한국의 이사국 지위를 보장하며 △AIIB 내부 고위직을 할당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 내에선 창립멤버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AIIB 참여가 막혀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즉각적인 참여보다는 시간을 두고 논의를 계속하는 것이 낫다는 신중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5일 “AIIB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데 미국의 반대보다 더 결정적인 요소는 한국이 참여할 경우 지분을 투자한 만큼 정당한 권한을 중국으로부터 받아내 AIIB가 중국의 ‘사적 기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기구 운영의 관행에 따르면 참가국들의 AIIB 투자 지분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의 GDP가 현재 AIIB 참가국의 절반이 넘기 때문에 중국의 투자 지분도 절반이 넘는다. ‘1달러 1표’라는 말처럼 국가별 투표권은 투자 지분에 비례한다. 중국이 과반수의 투표권을 갖고 중국 마음대로 AIIB를 운영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돈은 돈대로 내고 중국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게 한국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으로부터 한국의 권한에 대해 적절한 보장을 받지 못하는 이상 중국 할아버지가 와도 가입할 수 없고, 중국의 전횡을 막고 한국의 권한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미국 할아버지가 와도 가입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사드와 맞교환하나

일각에서는 AIIB 참여를 지렛대로 중국이 반대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도입하는 ‘빅딜’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외교부는 이는 단편적 시각이라고 부인한다. AIIB 가입이든, 사드 체계 도입이든 한국 국익에 직결되는 만큼 각각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주 한반도를 담당하는 미국과 중국의 차관보급 고위 인사들이 잇달아 방한하면서 서울에선 뜨거운 외교전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방한한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18일까지 머물면서 조태용 외교부 1차관과 이경수 차관보를 만난다.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도 16, 17일 한국을 찾아 조 차관과 이 차관보를 면담한다. 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AIIB 참여와 사드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egija@donga.com·이유종 / 세종=손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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