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폐기땐 4년간 對美수출 14조원 줄듯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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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한미 FTA 폐기 준비 지시]일자리도 年 3만개 감소 예상
기업들 “수출길 막히나” 초긴장
北 핵실험까지 겹치자 불안 고조

경기 평택에서 볼트, 너트 등을 생산하는 A사의 부사장 B 씨는 3일 ‘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검토한다’는 뉴스를 보며 머리를 싸맸다. 주요 고객 중 한 곳이 바로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 모터스(GM)였기 때문이다. A사는 연간 20억 개가 넘는 부품을 생산한다. B 씨는 “규모를 밝힐 순 없지만 상당 부분을 GM에 공급하고 있다. FTA가 폐기되면 판매가가 올라가고 수익성 악화는 뻔하다”며 초조해했다.

A사 같은 부품업체들은 FTA가 폐기되면 소위 ‘이중타격’을 받는다. 미국에 직접 수출하는 물량도 줄고,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의 대미(對美) 수출 감소에 따른 ‘도미노 타격’도 받는다. 차 부품업체들은 2012년 FTA 발효와 동시에 2.5% 관세가 철폐되며 혜택을 봐왔다. 지난해까지 5년간 연평균 수출 성장률이 8%에 달했다.

B 씨는 “하지만 지금은 수출 절벽에 직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중소 부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관세가 살아난다면 미국 시장 판로를 새로 뚫는 데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며 “완성차 업체 상황도 안 좋은데 설상가상”이라고 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미 FTA가 폐기될 경우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총 130억1000만 달러(약 14조5712억 원) 줄고, 수출 관련 국내 일자리도 매년 3만∼3만3000개씩 4년간 총 12만7000개가 줄어드는 것으로 예측됐다.

현대차 등 자동차업계는 FTA 폐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미국의 압박 끝에 불리하게 개정되면 피해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산 자동차의 별도 승인 없는 수입물량이 현재 연간 2만5000대에서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어 한국 기업들은 FTA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폐기 여부를 떠나 미국의 강경한 태도 자체가 우리 기업의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철강 업계도 폐기 논란을 계기로 미국의 보호무역이 강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부과한 반덤핑 관세도 FTA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미국 내의 보호무역 정책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 때문에 환율까지 불안한 변수로 떠올랐다. 대기업은 환차손을 방어하는 ‘헤지 거래’로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무방비 상태다. 북핵이 원화 약세,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면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하는 업체들은 재료비가 치솟는다. 이 때문에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기업 관계자는 “북핵은 외국인 투자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과거 핵실험은 개발 단계였지만 이번에는 거의 무기화 단계라 경제에도 영향이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인건비 인상까지 기업들은 궁지에 몰린 상태다.

문제는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한 자동차 부품업체의 C 부사장은 “우리는 50년 된 기업인데 이렇게 악재가 여럿 온 것은 처음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도 견뎠는데 이번에는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한중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미국이 FTA 문제를 들고나와 수출 주도형 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북한 핵실험까지 더해져 한반도 리스크가 길어지면 장기적으로 외국인 투자가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은택 nabi@donga.com·한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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