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反이스라엘 시위 확산]
美공화, 시위대에 “反유대주의” 공격
하원서 관련 법안까지 통과시켜… 청년들 “대량학살 반대 하는것”
바이든 양측 사이 옴짝달싹 못해… 시위 장기화땐 ‘대선 악재’ 우려
미국 대학가에 들불처럼 번진 중동전쟁 반대 시위가 11월 미 대선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애초 이 시위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를 낳는 이스라엘의 군사 대응과 그런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반대로 시작됐다. 하지만 서구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반(反)유대주의와 미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등 폭발력이 큰 이슈와 맞물리며 낙태권, 불법 이민자 문제에 이어 표심을 가를 중대 변수가 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대인을 혐오하는 반유대주의에 대해선 비판하면서도 반전 시위 등 사태 전반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청년층을 옹호하려니 대선을 앞두고 부(富)와 영향력을 지닌 유대계 유권자와 척을 져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를 노려 친이스라엘 성향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강경 진압론을 내세우며 바이든 대통령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한 지도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 “반유대주의” vs “표현의 자유 억압”
야당 공화당이 다수당인 미 하원은 1일(현지 시간) 반전 시위가 빠르게 확산되는 것에 맞서 ‘반유대주의 인식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부정하거나 이스라엘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를 ‘반유대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집권 민주당이 과반을 점한 상원에서도 이 법안이 통과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 당국은 시위대를 반유대주의 행위로 처벌하고, 시위를 방치하는 대학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전통 지지층인 청년층과 유대계 표심을 놓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상원에서 이 법안이 채택될지는 불투명하며, 백악관의 입장도 아직 분명치 않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반유대주의를 규탄한다”는 원론적 발언을 한 뒤 10일간 침묵하고 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이 1일 “대통령이 (시위에 대해) 정기적으로 보고받고 있다”고 밝힌 것이 고작이다.
시위대는 이런 그를 ‘제노사이드 조(Genocide Joe·대량학살자 조)’라고 비판한다. 미 조지워싱턴대에서 시위에 참가 중인 미리엄 림 씨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대량학살과 이를 지원하는 ‘제노사이드 조’를 비판하는 것이지 반유대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7일 홀로코스트 기념관 주최 행사에서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연설이 시위대의 분노를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미국에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1일 시위대를 ‘성난 미치광이(raging lunatics)’라고 지칭하며 “모든 대학 총장들은 즉시 농성장을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 ‘1968년 사태 재연될까’ 우려
바이든 대통령이 옴짝달싹 못 하며 시위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크다. 일각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집권 민주당에 악재로 작용해 대선 패배를 부른 1968년의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당시 반전 시위대는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때 거센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휴버트 험프리 대선 후보의 지명 수락 연설 직전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이 장면이 생중계되며 험프리 후보의 지지율이 추락했고, 결국 대선에서도 공화당 리처드 닉슨 후보에게 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대통령이 청년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하더라도 1968년의 재앙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는 8월 19∼22일 시카고에서 열린다.
그렇다고 시위 열기를 꺼뜨리기 위해 강경 대응에 나서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점도 바이든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든다.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백악관이 정답이 없는 기말고사에 직면했다”고 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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