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란 영사관 폭격에 이란 보복 천명…‘중동 갈등’ 최고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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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에 (이란 참전 등) 결정적 변화를 불러올 ‘마지막 지푸라기(the last straw)’가 될 수 있다.”(미국 CNN방송)

이스라엘이 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폭격함으로써 지난해 10월 발발한 중동 전쟁이 지역 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날 공격으로 이란 고위급 장교 3명 등 최소 11명이 목숨을 잃자, 이란은 “단호하게 대응할 권리”를 천명하며 보복을 시사했다.

특히 이번 미사일 타격은 그간 시리아 및 레바논의 친(親)이란 민병대나 무장조직을 대상으로 했던 공격과 달리 이란을 노골적으로 겨냥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갈수록 확전 우려가 높아지는 분위기에도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없었던 이스라엘과 이란의 ‘그림자 전쟁(shadow war)’이 결국 파국을 맞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군 고위급 등 11명 사망… 이란, 보복 천명

1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무너진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 건물에서 응급 구조대가 무너진 잔해 속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공격으로 훼손된 이란 국기도 보인다. 이 곳에 있던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간부 등 최소 8명이 숨졌다. 다마스쿠스=AP 뉴시스
1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무너진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 건물에서 응급 구조대가 무너진 잔해 속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공격으로 훼손된 이란 국기도 보인다. 이 곳에 있던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간부 등 최소 8명이 숨졌다. 다마스쿠스=AP 뉴시스

로이터통신 및 시리아 SANA 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1일 오후 12시 17분경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대사관 바로 옆에 있는 영사관에 미사일 6발을 쏟아부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이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 특수부대인 쿠드스군 고위 지휘관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와 부사령관인 모하마드 하디 하지 라히미 등 최소 11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직접 피해를 입은 이란 등은 즉각 분노를 드러냈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침략적인 이스라엘 정권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장관은 미국에도 “(이스라엘 지원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처벌 방식은 추후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란이 주도하는 ‘저항의 축(Resistance Axis)’에 동참해온 무장정파 헤즈볼라도 “적이 처벌과 응징을 당하지 않고선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론 이번 공격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공격을 감행한 건 맞다”고 보도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도 CNN 인터뷰에서 “공격한 건물은 영사관도 대사관도 아니다”며 “민간 건물로 위장한 쿠드스군의 군사 시설”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 “이란 본토 공격과 동급”… 휴전 무산되나

1일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에서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공습을 규탄하며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거나 발로 짓밟고 있다. 이란은 “대응할 권리를 갖고 있다”며 보복을 천명해 중동 전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1일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에서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공습을 규탄하며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거나 발로 짓밟고 있다. 이란은 “대응할 권리를 갖고 있다”며 보복을 천명해 중동 전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이란의 외교적 갈등이 줄곧 이어지긴 했지만, 이스라엘이 이란 외교공간을 직접 타격한 건 처음이다. 이전 공격은 주로 중동 지역에 산재한 이란 군사시설들이 대상이었다. 때문에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는 NYT에 “이란 본토를 표적으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했다.

현지에선 이번 공격 하루 전인 3월 31일 수도 예루살렘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등돌린 민심을 붙잡기 위해 극약 처방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지지부진한 전쟁 국면의 전환을 꾀했다는 시각도 있다.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란다 슬림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란에게 ‘너희의 방어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가 담겼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난처한 입장이다. 11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지지층의 반전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이란 참전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 정치매체 악시오스는 정부 고위급을 인용해 “미국은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며 “이란에도 이를 직접(directly) 설명했다”고 전했다.

당분간 휴전 시도는 물건너갔다는 전망도 나왔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의 사남 바킬 중동연구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이번 공격은 역내 긴장을 ‘심각하게’ 높일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이란을 직접 충돌로 몰아가려고 의도적으로 설계한 공격”이라고 짚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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