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상처’ 리비아 덮친 대홍수 “도시가 통째 바다로 휩쓸려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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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폭풍에 사망 최소 6000명

‘리비아 대홍수’로 폐허가 된 항구도시 데르나 10일 리비아 동부 항구도시 데르나를 강타한 폭풍 ‘대니얼’의 영향으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면서 댐 2곳이 연이어 무너져 도시의 약
 4분의 1이 물에 잠기거나 ‘흙바다’가 됐다. 영국 BBC는 “쓰나미 같은 홍수가 도시를 통째로 바다로 휩쓸고 갔다”고 전했다.
 12일 리비아 내무부에 따르면 이번 태풍으로 최소 6000명이 사망했고, 실종자도 최소 1만 명에 달한다. 데르나=AP 뉴시스
‘리비아 대홍수’로 폐허가 된 항구도시 데르나 10일 리비아 동부 항구도시 데르나를 강타한 폭풍 ‘대니얼’의 영향으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면서 댐 2곳이 연이어 무너져 도시의 약 4분의 1이 물에 잠기거나 ‘흙바다’가 됐다. 영국 BBC는 “쓰나미 같은 홍수가 도시를 통째로 바다로 휩쓸고 갔다”고 전했다. 12일 리비아 내무부에 따르면 이번 태풍으로 최소 6000명이 사망했고, 실종자도 최소 1만 명에 달한다. 데르나=AP 뉴시스
“댐이 터지면서 마치 거대한 벽처럼 생긴 물기둥이 튀어나와 모든 걸 없애 버렸다.”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부 항구도시 데르나를 덮친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아흐메드 압달라 씨는 12일 AP통신에 물이 집을 집어삼키던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10일 폭풍 ‘대니얼’이 상륙하면서 쏟아진 폭우로 데르나 인근의 댐 2곳은 순식간에 차올랐고, 댐이 연이어 터져 버리면서 생긴 엄청난 급류에 건물과 사람들은 순식간에 지중해 바다로 휩쓸려 갔다. 인구가 12만5000여 명인 이 소도시에서만 최소 6000명(13일 기준)이 숨지고 1만여 명이 실종됐다.

영국 BBC방송은 댐이 무너진 뒤의 상황을 보도하며 “쓰나미 같은 홍수가 도시를 통째로 바다로 휩쓸고 갔다”고 묘사했다. 오트만 압둘잘렐 리비아 동부(반군 정부) 보건부 장관은 “이번 비극은 데르나와 정부의 능력을 넘어선다”고 밝혔다.

● 내전으로 홍수 대비 인프라 황폐화


이번 폭풍이 막대한 피해를 야기한 배경에는 리비아의 정치 불안정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 이후 시작된 내전이 10년 넘게 지속되며 홍수 대비 기반시설이 노후화된 상태로 방치돼 유사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데르나에는 대니얼이 상륙한 10일부터 하루 170mm의 폭우가 내렸다. 이 지역의 9월 평년 강수량은 10mm다. 불과 하루 동안 한 달간 내릴 비의 17배가 쏟아진 것이다. 엄청난 강우량에 데르나 인근의 댐 두 곳이 시민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어 주지 못하고 허망하게 무너졌다.

리비아에선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한 이후 2011년 카다피 지지 세력과 반군인 리비아국민군(LNA)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이 상황을 틈타 이슬람국가(IS) 무장세력이 데르나를 점령했고, 2019년 LNA가 데르나를 탈환하기 위해 전투를 치르면서 댐 등 기반시설 일부가 파괴됐지만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다. 아흐메드 마드루드 데르나 부시장은 “댐들이 2002년 이후로 정비되지 않았다”고 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엔 리비아특사를 지낸 스테퍼니 윌리엄스는 “이 지역에선 댐, 담수 공장, 전력망, 도로 등이 파괴된 채 방치돼 있다”며 “시민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알리는 경보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다”고 WP에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정치적 분열, 경제 불안, 기반시설 황폐화 등이 하나의 재앙으로 합쳐졌다”고 보도했다.

이번 홍수 사태 전부터 폭풍과 홍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이 역시 간과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학술지에 실린 보고서에는 ‘큰 홍수가 발생하면 두 댐 중 하나가 붕괴돼 데르나 주민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 수온 2도 넘게 상승…폭풍 부른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이번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지중해 수온이 평년보다 2, 3도 올라갔다는 점을 꼽는다. 지표와 해수 기온이 따뜻할수록 증발하는 수증기 양이 많아져 보다 강력한 사이클론이 발달할 수 있다. 폭풍 대니얼은 그리스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후 튀르키예 인근에서 소멸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따뜻한 해수를 쫓아 지중해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폭풍의 이동 속도가 느렸던 점도 피해를 키웠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대니얼 같은 열대성 저기압은 해수 온도가 높은 지역에서 수증기를 더 많이 머금기 위해 느리게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독일 라이프치히대의 기후과학자 카르스텐 하우스타인은 “지중해 기온이 평년과 비슷했다면 대니얼이 이 정도로 발달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해안가 지역 중 유독 데르나에 피해가 집중된 이유에 대해 NYT는 “데르나와 연결된 가파르고 거대한 골짜기가 빗물을 모으는 깔때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내전 상처#리비아#대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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