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韓 과학기술 정책, 큰 그림 대신 예산조정해 대응”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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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韓 혁신 정책 리뷰’ 보고서
“과학기술-경제발전 연계 전략 없어… 과기부, 장기전략 수립에 집중해야
민간 R&D 대기업-제조업에 편중… 서비스업-중기 혁신 독려해야”

“총괄적인 혁신 정책을 개발하기보다는 (정부부처 간) 예산을 재조정해 새 우선순위에 대응하는 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정부의 과학기술 혁신 정책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과학기술 혁신을 이끌 큰 그림을 그리는 대신 부처 간 기존 사업을 조정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의 정책 추진에 과도하게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또 민간 분야에서는 연구개발(R&D) 활동이 대기업과 제조업 분야에 집중돼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스타트업이 확장하거나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 “과학기술-경제발전 연계한 계획 필요”

OECD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OECD 혁신 정책 리뷰: 한국 2023년’ 보고서를 발간했다. OECD는 한국이 첨단기술을 빠르게 외국에서 들여온 데다 중앙집중적인 강력한 집행 체제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에 ‘퀀텀 점프(대도약)’가 필요한 현 시점에서 혁신에 제약이 되는 요소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과 경제발전 전략을 아우를 범정부 차원의 국가 개발 로드맵이 없다는 점을 짚었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0년 ‘과학기술미래전략 2045’를 발표했다. 기획재정부도 장관 자문기구인 중장기전략위원회를 2021년(5기), 올 6월(6기) 출범시켰다. OECD는 이에 대해 “과기부는 전반적인 경제발전 비전과 과학기술 전략을 연계하지 않았고, 기재부는 과학기술 분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며 “두 부처가 명시적으로 (정책을) 조율하고 연계해야 한다”고 했다.

큰 그림이 없다 보니 부처 간 조율을 마치 기존 사업의 조정이나 예산 재조정으로 좁게 이해하고 있는 문제도 지적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기준 30조 원을 넘는 전 부처의 과학기술 R&D 사업을 조정하고 있다. OECD는 “현재 조정 프로세스는 로드맵에 따른 새 사업을 구상하기보다는 부처 간 자원 할당과 예산 경쟁을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프로그램 관리와 규정 준수 등의 작업을 다른 부처나 기관에 위임하고 과기정통부와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전략 수립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대기업-제조업 중심 구조 변화해야”

OECD는 한국을 ‘첨단기술 강국’으로 평가하면서도 중소기업, 서비스업 혁신이 뒷받침되지 못해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혁신 활동이 대기업과 제조업에 집중돼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R&D 국내총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4.9%로, OECD 28개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다. 하지만 지출의 74.3%가 기업 분담이었으며, 이 가운데 62.5%를 대기업이 지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적으로 OECD는 “한국 근로자의 83%가 중소기업에 고용돼 있지만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26%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OECD는 “한국 중소기업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생산성이 현저히 낮은 반면 대기업은 생산성이 높다”며 “한국의 산업구조가 불균형하다”고 분석했다.

OECD는 한국 대기업의 제조업 편중 현상도 지적했다. OECD는 지난해 4월 스마트폰 세계 시장 점유율 약 24%를 달성한 삼성을 한때 세계 휴대전화 점유율 1위를 차지했던 핀란드의 노키아와 비교했다. 보고서는 “삼성은 한때 노키아가 거둔 성공과 매우 흡사하다”며 “애플과의 경쟁에서 실패한 노키아의 쇠퇴는 2008∼2014년 핀란드 GDP 하락과 고용 손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 R&D에서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기준 10.6%에 불과했다. OECD는 한국이 기술 중심화 산업 전략을 채택해 성장한 만큼 이를 활용해 지식집약적 서비스 부문에서 혁신을 독려하고 중소기업에 혁신 기술을 전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oecd#과학기술 정책#큰 그림#예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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