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오염수 방류 미룰 수 없어”… 과학보다 중요한 ‘신뢰’ 쌓아야 [글로벌 포커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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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 들어간 日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일본 “정화 후엔 안전성 문제없어”
오염수 오해 해명하며 강행 의지
IAEA 보고 이후 총리 결정만 남아

일본 도쿄전력 직원이 지난달 26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오염수 방출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리키고 있는 부분은 원전 오염수 삼중수소 농도를 낮추기 위한 희석용 바닷물이 흐르는 배관이다. 후쿠시마=AP 뉴시스
일본 도쿄전력 직원이 지난달 26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오염수 방출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리키고 있는 부분은 원전 오염수 삼중수소 농도를 낮추기 위한 희석용 바닷물이 흐르는 배관이다. 후쿠시마=AP 뉴시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4일 일본을 방문하는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만나 IAEA 최종보고서를 전달받는 것으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사전 작업은 마무리를 짓는다. 오염수 해양 방류는 사실상 기시다 총리의 최종 결정만을 남겨 두게 된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12년 4개월 만에, 2013년 방사성 물질 정화(淨化) 시설인 다핵종제거설비(ALPS) 시험 운전을 시작하며 오염수 해양 방류를 준비한 지 10년여 만에 후쿠시마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가 현실화하는 셈이다.

일본 정부와 IAEA 그리고 권위 있는 세계 원자력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오염수가 적절하게 정화 처리돼 방류된다면 해양 생태계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일부 태평양 섬나라 등 주변국은 물론이고 일본 국내에서도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 일본 정부로서는 오염수 방류를 위해 후쿠시마 및 인근 지역 어민들의 이해를 얻어야 하지만 이들의 반대도 상당히 거세다. 지금대로라면 오염수를 방류해 당장 해양 환경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과학적 논쟁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지속될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 “희석한 오염수 삼중수소 농도는 빗물 수준”


후쿠시마 오염수는 2011년 3월 내부 수소가 폭발하면서 망가진 원자로에서 발생하고 있는 물이다. 자연 발생하는 지하수 빗물 등이 원자로 내부에 침투해 고농도 방사성 물질과 섞이며 만들어진다. 원자로 내부에 녹아내린 핵연료 파편은 고농도 방사능 때문에 사고 12년이 지난 현재도 겨우 안정화만 시켜놓았을 뿐 처리에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원자로 내부 오염수는 그대로 두면 바다로 넘쳐흐르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뽑아내 원전 부지에 설치한 1000개 넘는 탱크에 담아두고 있다. 현재 약 137만 t이 담겨 있다. 사고 초기 오염수는 하루 170t가량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하루 100t 안팎으로 감소했다. 폭발로 부서진 원전 지붕을 보수하고 물막이 벽을 설치해 원자로에 유입되는 자연수 양이 줄었기 때문이다.

오염수에는 세슘 스트론튬 요오드를 비롯해 각종 방사성 물질 70종가량이 섞여 있다. 도쿄전력은 이 오염수를 1차 정화 처리해 인체에 치명적인 세슘 스트론튬을 제거한다. 이어 ALPS를 통해 62종류의 방사성 물질을 제거한다. 두 차례 정화 처리를 통해 오염수에 함유된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은 없어지지만 삼중수소는 남는다.

삼중수소 처리를 위해 도쿄전력은 바닷물을 끌어와 오염수와 희석한다. 이렇게 하면 삼중수소 농도가 일본 규제 기준(L당 4만 Bq·베크렐)의 40분의 1 수준인 L당 1500Bq 밑으로 떨어진다. 일본 정부는 정화 전 오염수와 정화를 마친 처리수는 다르다며 방류하는 오염수를 ‘ALPS 처리수’라는 공식 용어로 부른다.

정화 및 희석이 끝난 오염수는 길이 1km 해저터널을 통과해 바다 밑 12m 지점에 설치된 방류구를 통해 바다로 유입된다. 도쿄전력은 방류구 앞 삼중수소 농도가 L당 700Bq, 방류구에서 10km 떨어진 곳의 삼중수소 농도가 L당 30Bq 이상으로 측정되면 이상(異狀) 상황으로 판단해 오염수 방류를 중단한다. L당 30Bq은 한국 원전 배출수 삼중수소 농도 기준치(L당 4만 Bq)의 0.075%에 해당한다. 한국 원전 4곳 인근의 바닷물에서 측정한 농도(4.22∼66.9Bq)와도 큰 차이가 없다.

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는 “후쿠시마에서 방류하는 물 전체에 들어 있는 방사성 물질은 (결과적으로 무단 방류된) 2011년(원전 폭발 당시)의 10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며 “삼중수소 역시 바닷물에 희석하면 한강이나 빗물에 있는 양과 같아진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2021년 오염수 방류를 결정했을 당시 “방사성 물질은 일본 규제 기준을 밑돌 때까지 정화 처리하고 삼중수소는 충분히 희석해 규제 기준을 크게 밑도는 농도로 방출한다”며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의 해양 환경 및 수산물 안전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ALPS를 비롯한 일본 정화 설비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박구현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올해 도쿄전력이 돌린 ALPS 입출구 데이터 분석 결과를 시찰단이 받아서 분석하고 있는데 현재 ALPS 기준으로는 배출 기준 이상 검출되는 핵종은 없는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핵 오염수가 한 번 바다에 버려지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며 “윤석열 정부가 오염수 방류 중단을 일본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日 “방류는 폐로 첫 단추, 미룰 수 없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오염수 해양 방류 의지는 확고하다. 도쿄전력 측은 지난달 28일 주주총회에서 오염수 방류에 대해 “폐로(閉爐)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결코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도 “처리수 방류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범정부적으로 안전성 확보와 소문 피해 대책을 철저히 추진하는 동시에 정중한 설명과 의견 교환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염수 방류 일정을 조정할 뜻은 없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일본으로선 오염수 방류가 2050년을 목표로 하는 후쿠시마 원전 폐로 작업의 첫발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이미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죽음의 땅’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는 한 폐로 작업은 지역 재건의 필수다. 후쿠시마 지역 재건을 담당하는 일본 부흥청 측은 “폐로에는 30∼40년이 걸린다고 본다. 예측은 어렵지만 국가가 책임지고 폐로 대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폐로 작업 첫 단계가 원전 부지를 가득 채운 오염수 처리다. 바다에 방류해 오염수 탱크 수를 줄여 나간 뒤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토지 복원, 녹아내린 핵연료 제거 등이 뒤따른다.

문제는 오염수 방류 이후 폐로 작업을 위한 구체적인 세부 계획이나 기술을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향후 폐로 작업 진전을 위해서라도 현 단계에서 오염수 처리는 급선무라는 얘기다.

일본 정부는 최근 오염수의 안전성을 알리는 홍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오염수가 방류되면 일본산 수산물을 수입하지 않기로 한 홍콩 당국에 금수(禁輸) 조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오염수 설명 자료에서 중국 저장성 타이산 제3원전에서 나오는 연간 삼중수소량(143TBq·테라베크렐)이 후쿠시마 오염수로 방류될 연간 삼중수소량(22TBq)의 6.5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일본 정부가 IAEA에 100만 유로(약 14억 원)의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취지의 한국 인터넷 매체 보도에 이례적으로 마쓰노 장관이 직접 나서 “허위 정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우리는 국제기구의 과학적 검증을 받고 투명하게 설명하지만 중국은 (삼중수소 배출과 관련해) 이웃 나라와 상의도, 설명도 하지 않는다”며 “한국의 삼중수소 배출량이 일본보다 많다는 건 한국 국민도 알고 있지 않나”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태평양 섬나라의 반대 목소리도 높다. 뉴질랜드 최대 일간지 뉴질랜드헤럴드는 올 2월 “100만 t 이상의 오염수를 호주 앞에 버리려는 부당한 계획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며 핵무기 실험으로 피해를 본 태평양 지역 주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것이라는 환경단체 행동가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 “과학적 논리만으로는 설득 어려워”

오염수 방류를 두고 한국에서는 과학적 검증 결과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정부와 ‘정부가 일본 대변인이냐’며 비판하는 야당이 격렬하게 대립하지만 일본 정치권에서 이런 갈등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일본 제1야당 입헌민주당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논의한 뒤 결정하고 실효성 있는 피해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염수 방류 자체를 비난하거나 반대하지는 않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 60%가 오염수 방류에 찬성해 반대(30%)의 배에 달했다. 일본에서는 소금 사재기, 해산물 소비 위축 같은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도쿄 시나가와구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가와사키 씨(48)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논란을 TV로 접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해산물이나 소금에 문제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 (방류 논란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가장 세게 반대하는 측은 후쿠시마 및 인근 어민들이다. 노자키 데쓰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정부와 도쿄전력이 어민들의 요청에 따라 설명을 거듭하고 있는 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어민들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 방류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에는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달 22일 일본 전국어협연합회가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특별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과거 3차례 특별 결의안에 썼던 ‘단호한 반대’라는 표현은 빠졌다. 연합회 관계자는 “처리수(오염수)를 내보내도 상관없느냐고 한다면 그건 전혀 아니다”라면서도 “정부가 ‘안전하다’고 언급한 설명은 확실히 들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지역을 연구해온 이가라시 야스마사(五十嵐泰正) 일본 쓰쿠바대 교수(사회학)는 “방류에 반대하는 후쿠시마 어민 중에서 건강에 해로울 것이라고 실제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방류하면 수산물을 사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에 따른 피해를 걱정하는 것”이라며 “과학적인 안전성 자체에 (일본 국민이) 불안을 가진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2015년 후쿠시마 어협연합회에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어떤 처분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했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관계자’는 누구까지인지, ‘이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다. 일본 정부가 설명회를 거듭 가진 뒤 ‘주민(어민)들이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도 약속을 어긴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 캠페인에서는 ‘안전과 안심은 다르다’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검증됐어도 이를 통해 사람들이 안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다. 후쿠시마어협에 따르면 지난해 후쿠시마 수산물 어획량은 5525t으로 동일본대지진 이전의 20% 수준이다. 사고 초기 도쿄 수산물 도매시장에서는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한 경매 입찰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을 지낸 가이 미치아키(甲斐倫明) 일본문리대 교수(방사선보건)는 “과학적 논리와 근거만으로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라며 “제3자가 방사선(방사성 물질) 모니터링을 계속하면서 우려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만들어 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일본#오염수 방류#과학#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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