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방문을 꿈에 비유한 퍼스트레이디[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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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알 아즈하르 사원을 방문한 질 바이든 여사. 백악관 홈페이지


I believe the youth of Egypt. just like your peers around the world, are our future.”
(나는 이집트의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미래라고 믿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최근 해외 순방을 마쳤습니다. 일주일에 걸쳐 포르투갈, 요르단, 이집트, 모로코 등 4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집트의 유서 깊은 알 아즈하르 사원을 방문했을 때 미리 준비해간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신발을 벗고 입장했습니다. 질 여사뿐 아니라 동행한 딸, 여동생도 똑같은 차림으로 사원을 둘러봤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의미 있는 배려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이번 방문은 남편과 동행하지 않는 질 여사의 단독 해외 방문이었습니다. 스카프를 두른 모습만큼 연설도 화제였습니다. 알 아즈하르 사원에서 ‘this I believe’(내가 믿는 이런 것들)이라는 주제로 이집트의 젊은 여성들에게 교육의 필요성, 문화적 포용을 강조했습니다. 미국 퍼스트레이디들은 남편과 별도로 자신이 벌이는 사회운동 캠페인이 있습니다. 질 여사가 주도하는 ‘this I believe’ 캠페인은 취약계층 지원과 자립심 고취 운동입니다.

대통령 부인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 사절입니다. 남편과 함께, 또는 남편 없이 홀로 다른 나라를 방문해 국익을 위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질 여사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2년 동안 미국 내 40개 주 100개 도시, 해외 10개국을 방문했습니다. 72세라는 적지 않는 나이를 감안하면 정력적인 활동입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를 나홀로 방문했고, 미국과 중국의 원조 경쟁이 펼쳐지는 아프리카에는 올해 두차례나 갔습니다. 화제를 뿌렸던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해외 방문을 알아봤습니다.




You certainly have left golden footprints behind you.”
(당신은 확실히 귀중한 인상을 남겼다)
퍼스트레이디가 단독 해외 방문을 시작한 것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 때부터입니다.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루즈벨트 대통령은 엘리너 여사에게 영국 방문을 제안했습니다. 영국이 어떻게 독일에 맞서 싸우고 있는지 직접 보고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활동적인 엘리너 여사는 이 제안을 적극 환영했습니다.

엘리너 여사는 한달 넘게 영국에 머물렀습니다. 미군 지프를 타고 군사시설 공장 병원 학교 대피소 등을 샅샅이 누비고, 영국 전선에 파견된 미군들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오전 8시부터 밤중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그녀를 수행한 영국 군인들까지 녹초가 될 정도였습니다. 전장을 둘러본 엘리너 여사는 ‘마이 데이‘(My Day)라는 일기를 써서 미국에 송고했습니다. 이 일기는 미국 신문에 보도돼 유럽의 전쟁 상황을 빨리 접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가 됐습니다.

엘리너 여사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개선점까지 찾았습니다. 고국의 가족들로부터 받는 편지가 늦어져 실망하는 미군들을 보고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고해 군 우편 체계를 개편하도록 했습니다. 일선의 군인들이 양말 때문에 발에 물집이 생기자 군 당국에 제안해 양말 재질을 바꾸도록 했습니다.

윈스턴 처칠 총리는 엘리너 여사의 열성에 감동했습니다. 엘리너 여사가 귀국할 때가 되자 “당신은 금발자국을 남겼다”라고 말했습니다. ‘leave footprints behind’는 ‘인상을 남기다’라는 뜻입니다. 그냥 발자국도 아닌 금발자국이라고 한 것은 엘리나 여사가 양국관계에 미친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영국 방문이 큰 성공을 거두자 엘리너 여사는 1년 뒤 태평양전쟁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했습니다.

1962년 인도 타지마할 앞에서 재클린 케네디 여사.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1962년 인도 타지마할 앞에서 재클린 케네디 여사.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It’s been a dream.”
(꿈만 같았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는 유럽을 방문했습니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재클린 케네디 여사는 남편보다 더 큰 화제를 몰고 다녔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프랑스 방문 때 “I’m the man who accompanied Jackie Kennedy to Paris”(나는 재키 케네디를 프랑스까지 수행한 사람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유럽 방문을 계기로 재클린 여사는 케네디 행정부의 둘도 없는 외교 자산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이듬해 케네디 대통령은 외교 마찰을 빚는 인도를 친선 방문해 줄 것을 재클린 여사에게 제안했습니다. 당시 인도가 포르투갈령인 고아 지역을 무력으로 병합한 것 때문에 미국-인도 관계는 껄끄러웠습니다. 바쁜 케네디 대통령을 대신해 재클린 여사의 여동생 리 라지윌이 동행했습니다.

재클린 여사는 미국 국적기 대신에 에어인디아를 타고 인도 땅을 밟았습니다. 인도 9일, 파키스탄 5일 등 총 14일의 긴 일정이었습니다. 짐 트렁크만 62개에 달하는 대이동이었습니다. 재클린 여사는 인도 방문 9일 동안 22벌의 의상을 갈아입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언론의 관심이 재클린 여사의 의상에 집중되면서 “외교 방문이 아니라 패션쇼”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타지마할 구경, 폴로 게임 관전, 민속 댄스 관람 등으로 이뤄진 일정을 두고 “인도의 빈곤을 외면했다”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재클린 여사의 방문이 패션이나 관광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발 전 인도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라다크리슈난의 책들을 독파한 재클린 여사는 인도 역사에 해박한 지식으로 현지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의 특징을 적은 메모지를 들고 다니며 대화를 이끌어나갔습니다. 재클린 여사는 귀국 후 “꿈만 같았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인도 방문은 재클린 여사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쳐 나중에 뉴욕에서 편집자로 일할 때 다시 인도를 찾아 예술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1977년 남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로잘린 카터 여사. 위키피디아
1977년 남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로잘린 카터 여사. 위키피디아


I worked in a peanut warehouse, and I didn’t think about being a woman working in a peanut warehouse.”
(나는 땅콩 창고에서 일했지만, 땅콩 창고에서 일하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정치성이 강한 퍼스트레이디의 해외 방문은 1977년 로잘린 카터 여사의 남미 방문입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 불린 로잘린 여사는 남편 취임 5개월 만에 남미 7개국 단독 방문에 나서며 영향력을 과시했습니다. 브라질과는 핵 개발과 인권을 논의했고, 자메이카와는 채무 보증 문제가 테이블에 올랐습니다. 대미 소고기 수출량을 늘려달라는 코스타리카 대통령의 부탁에 딱 잘라 “노”라고 답했습니다.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로잘린 여사는 떠나기 전부터 남미 전문가 40여 명으로부터 1회 5시간씩 남미 특별과외를 13회나 받았습니다. 남미에 가서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서류를 읽고,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담당자들을 깨워 추가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정치 현안을 논의하는 로잘린 여사의 자신감에 상대국 정상들은 “보기 드문 여성” “남편(카터 대통령)과 대화하는 줄 알았다”라며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퍼스트레이디로는 전례가 없다”라는 기자들의 평가에 로잘린 여사는 남편과 함께 힘들게 땅콩 농장을 경영하던 시절 얘기를 꺼냈습니다. 땅콩 창고에서 허드렛일을 했지만, 여성으로서 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동등한 비즈니스 동반자로서 한 것이라고 의미입니다.

명언의 품격
1995년 유엔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연설하는 힐러리 클린턴 여사. 빌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1995년 유엔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연설하는 힐러리 클린턴 여사. 빌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1994년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 여사가 야심 차게 이끌던 건강보험 개혁안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여파로 민주당은 그해 중간선거에서 참패했고, 공화당은 42년 만에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이른바 ‘공화당 혁명’을 이뤘습니다. 힐러리 여사는 ‘워싱턴의 방사성 물질’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모두 피하고 싶어 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그렇게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는 듯했던 힐러리 여사는 이듬해 3월 중국에서 열린 유엔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부활했습니다. 미국 대표 자격으로 베이징을 방문한 힐러리 여사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성 인권유린 사태를 고발하며 여성의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If there is one message that echoes forth from this conference, let it be that human rights are women‘s rights and 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 once and for all.”
(이 콘퍼런스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최종적으로 인권은 여성의 권리이고,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라는 것이다)
핵심 구절은 ‘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이라는 뒷부분으로 1800년대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인 그림케 자매가 처음 썼던 구절입니다. 아메리칸 레토릭이 선정한 미국 100대 명연설 35위에 오른 연설이자 뉴욕타임스가 “정치인 힐러리 최고의 순간”으로 꼽은 연설입니다. 연설 곳곳에서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중국 인권 상황을 에둘러 비판했습니다. 힐러리 여사는 나중에 회고록 ‘리빙 히스토리’에서 “중국의 반발이 예상됐지만 여성 문제에 관한 한 소신 있게 밀고 나가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힐러리가 2016년 대선 때 이렇게 뛰어난 연설을 했더라면”이라며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실전 보케 360

아마존 정글에서 40일 동안 생존하다가 구조된 콜롬비아 4남매가 병원에 입원한 모습. CNN 캡처
아마존 정글에서 40일 동안 생존하다가 구조된 콜롬비아 4남매가 병원에 입원한 모습. CNN 캡처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아마존 정글에서 40일 동안 버틴 콜롬비아의 원주민 부족 4남매가 극적으로 구조됐습니다. 4남매는 경비행기 사고로 추락한 뒤 밀림의 거친 환경 속에서 평소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식량과 거처를 구하면서 한 달 넘게 생존했습니다. 콜롬비아의 희망이 된 4남매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AP통신에 따르면 심리치료 중에는 그림을 그리는 치료도 포함돼 있습니다. 4남매의 삼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Sometimes they need to let off steam.”
(긴장을 풀 필요가 있다)
‘let’은 “let’s go”처럼 조동사로 쓰일 때도 있고 본동사로 쓰일 때도 많습니다. 본동사일 때는 주로 ‘let on’ ‘let off’의 형태로 씁니다. ‘let off’는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내놓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고 싶다면 버스 기사에게 “let me off at the next stop”이라고 하면 됩니다. ‘let off steam’은 ‘열을 밖으로 꺼낸다’라는 뜻입니다. 생존한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입니다. 충격을 그림을 통해 발산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let off steam’ 대신에 ‘blow off steam’(열을 끈다)이라고 해도 됩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0년 6월 22일 소개된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멜라니아 여사는 다른 퍼스트레이디들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미국 출생이 아니라는 점, 전직 모델이라는 점 등 배경부터가 다릅니다. 공식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멜라니아 여사의 단독 해외 방문은 2018년 아프리카 4개국 방문이 유일합니다. 워낙 비밀스러운 이미지라서 언론 보도에서 미스터리’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2020년 6월 22일 PDF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622/101620672/1

2018년 아프리카 방문 때 이집트 피라미드를 둘러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백악관 홈페이지
워싱턴포스트 기자 매리 조던이 쓴 ‘그녀의 협상 기술: 멜라니아 트럼프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출간됐습니다. 그동안 멜라니아 여사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이 공개된 책은 아닙니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모아놓은) 긴 기사를 읽는 것 같다”라고 평했습니다. ‘차가운 미소 뒤에 숨은 철저히 계산된 처세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숨겨진 일등공신’ 등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들입니다. 그래도 재미있는 뒷얘기와 주변인들의 생생한 증언이 꽤 많이 등장합니다.

This is not some wallflower.”
(내성적인 여자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친한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멜라니아 여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wallflower’(월플라워)는 ‘꽃무’라는 풀입니다. 내성적인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파티에서 춤을 청하는 사람이 없어 벽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꽃 같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멜라니아 여사가 공식 석상에 잘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라는 겁니다. 막후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When she goes and does something, it is well executed, it is well thought-out.”
(그녀가 무슨 일을 할 때는 치밀하게 계획해서 빈틈없이 행동한다)
트럼프 행정부 초대 대변인을 지낸 숀 스파이서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용의주도한 사람을 가리켜 ‘well thought-out, well-executed’라고 합니다. ‘치밀하게 계획해서 빈틈없이 행동한다’라는 뜻입니다. 멜라니아 여사는 무슨 일이든 서두르지 않고, 철저한 계획을 세워서 행동하는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One of the most lethal places to find oneself is in Melania’s crosshairs.”
(멜라니아의 표적이 되는 것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
멜라니아 여사의 보좌관이 한 말입니다. 총기에 부착된 조준경에는 가느다란 십자선이 있습니다. 이를 ‘cross hairs’라고 합니다. ‘표적’을 뜻합니다.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장소는 멜라니아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라는 것은 결국 그녀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의미입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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