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다룬 美 6부작 다큐멘터리 세계에 방영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0일 15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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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9명 송환 도운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주인공
6·25 활약 후 납북, 최원모 켈로부대 선박대장 부부 재조명
美 감독 “납북자 문제 외면 놀라워… 다큐가 변화 계기 되길”

다큐멘터리 시리즈 촬영을 위해 서울 송파구 납북자가족모임 사무실을 찾은 스콧 크리스토퍼슨 감독(오른쪽)이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운데)를 만났다. 왼쪽은 스펜서 허미스톤 공동 감독. 사진 제공 납북자가족모임


북한에 억류된 납북자 문제가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제작돼 조만간 세계에 방영된다.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스콧 크리스토퍼슨 브리검영대 교수는 16일(현지 시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올해 안에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겸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을 주인공으로 한 6부작 다큐멘터리가 방영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납북자 문제가 해외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는 것은 처음이다.

크리스토퍼슨 감독은 이날 “뉴욕타임스(NYT)에서 최 대표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납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함께 6·25전쟁에서 싸웠던 참전용사가 납북되고 그 아들이 아버지를 되찾기 위해 북한 억류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송환시키고 있다는 얘기가 강렬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최 대표 부친 최원모 씨와 모친 고 김애란 씨는 미국이 6·25전쟁 당시 대북 정보 수집을 위해 조직한 첩보부대 켈로(KLO)부대에서 부부 대원으로 활동했다. 전투에 나서기 전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자. 죽어서도 충성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인천상륙작전 숨은 주역이던 이들 부부 앞에 전쟁 후 비극이 찾아왔다. 1967년 풍복호 선주로 조업 중이던 최 씨가 북한 무장선 10여 척에 포위 당해 총격을 받고 납북된 것. 북한은 석 달 뒤 선원 5명은 돌려보냈지만 최 씨는 붙잡아 뒀다.

하지만 부인 김 씨는 남편이 납치된 아픔조차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납북자를 월북자 취급하며 연좌제의 굴레를 씌운 탓에 아들 최 대표에게 부담이 될까 우려해서였다. 김 씨는 6·25전쟁 당시 폭탄 파편에 종아리 관통상을 입었음에도 상이군인 신청도 하지 못했다.

최 대표는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후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한으로 송환됐지만 납북자 문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자 납북자 가족 모임을 결성해 지금까지 납북자 9명, 국군포로 12명의 탈북과 송환을 도왔다. 하지만 어머니 김 씨는 끝내 남편의 송환을 보지 못하고 2005년 눈을 감았다. 정부는 2013년 납북자로서는 처음으로 아버지 최 씨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고 2018년 최 씨 위패와 함께 부인 김 씨를 현충원에 안장했다.

2018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납북자 최원모 씨(오른쪽 영정 사진)와 부인 김애란 씨(오른쪽 두 번째 영정 사진) 위패 및 유골 봉안식. 두 사람은 6·25전쟁 당시 대북 첩보 임무를 맡은 켈로부대(8240유격백마부대)에서 함께 활동했다. 1967년 최 씨는 연평도 인근에서 조업하다 북한군에 나포돼 돌아오지 못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018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납북자 최원모 씨(오른쪽 영정 사진)와 부인 김애란 씨(오른쪽 두 번째 영정 사진) 위패 및 유골 봉안식. 두 사람은 6·25전쟁 당시 대북 첩보 임무를 맡은 켈로부대(8240유격백마부대)에서 함께 활동했다. 1967년 최 씨는 연평도 인근에서 조업하다 북한군에 나포돼 돌아오지 못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018년부터 5년간 최 대표를 촬영한 크리스토퍼슨 감독은 최 대표 부친 최 씨가 켈로부대 북진호 선박대장으로 활동한 백령도 등을 찾아 그 발자취를 되짚었다. 그는 “최 씨가 북한에서 총살됐다는 얘기가 전해지지만 최 대표는 한사코 ‘아버지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며 “그는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한국에 데려올 때마다 아버지를 모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건 카타르시스적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슨 감독은 “48세에 납북자 송환 활동을 시작한 최 대표가 이제 71세”라며 “하지만 그동안 한국 정부는 납북자 구출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물론 남북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사안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 문제를 외면해온 것은 놀랍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에 억류됐다 2017년 석방 직후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을 언급하며 “북한은 결코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이는 세계가 북한에서 발생하는 대량 학살에 눈감고 있다는 사실만큼 놀라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된 한국 정부는 미국 일본과 함께 북한 인권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처음으로 14일 납북자 가족인 최 대표를 청와대 영빈관으로 특별초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납북자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19인 용사상’을 찾은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사진 제공 스콧 크리스토퍼슨 감독


크리스토퍼슨 감독은 “일본이 납북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고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도 납북자 문제 같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이는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 HBO 등이 다큐 시리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만간 (방영)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이 다큐멘터리로 납북자 문제가 다시 조명 받고 변화를 끌어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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