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대만 대리전’ 파라과이 대선, 親대만 집권우파 웃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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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中 페냐 당선… 野 분열도 영향
평소 “대만과의 관계 고수” 밝혀
차이잉원 “양국 지속적 협력 기대”
‘차이나 머니’ 중남미 공략엔 제동

지난달 30일 파라과이 대선에서 승리한 집권 콜로라도당의 산티아고 페냐 당선인(왼쪽에서 두 번째)이 투표 종료 후 수도 아순시온 
당사에서 당선을 확신하며 오른손을 치켜들어 환호하고 있다. “대만과의 수교 지속”을 주장한 페냐 당선인과 “대만과 단교 후 중국과
 수교”를 외친 야당 후보 에프라인 알레그레의 이번 대결에 중국과 대만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아순시온=AP 뉴시스
지난달 30일 파라과이 대선에서 승리한 집권 콜로라도당의 산티아고 페냐 당선인(왼쪽에서 두 번째)이 투표 종료 후 수도 아순시온 당사에서 당선을 확신하며 오른손을 치켜들어 환호하고 있다. “대만과의 수교 지속”을 주장한 페냐 당선인과 “대만과 단교 후 중국과 수교”를 외친 야당 후보 에프라인 알레그레의 이번 대결에 중국과 대만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아순시온=AP 뉴시스
지난달 30일 중남미 파라과이 대선에서 반(反)중국 친(親)대만 노선을 표방한 집권 우파 콜로라도당의 산티아고 페냐 후보(45)가 여론조사 열세를 딛고 ‘깜짝 승리’를 이뤄냈다. “당선되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겠다”고 공언했던 중도좌파 야당 후보 에프라인 알레그레(60)의 낙선에 대만과 미국 모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1일 “파라과이 새 정부와 대만의 지속적인 협력 및 교류 심화를 기대한다”고 반색했다.

파라과이는 바티칸, 팔라우, 나우루 등 13개국에 불과한 대만의 수교국 중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3월 말 또 다른 중남미 국가 온두라스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터라 대만과 중국 모두 이번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번 결과로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중남미에서 연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의 행보에도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美 유학한 경제통 페냐, 야권 분열 수혜
페냐 당선인은 이날 대선에서 42.7%의 지지를 얻어 27.5%를 득표한 알레그레 후보를 넉넉히 제쳤다. 그는 아순시온가톨릭대에서 경제학,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각각 전공했다. 파라과이 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근무했고 모교 아순시온가톨릭대 교수, 재무장관 등을 역임한 경제통이다. 우파 거두 오라시오 카르테스 전 대통령의 후원을 받고 있다. 8월 15일 임기 5년의 대통령에 공식 취임한다.

친대만, 친미 성향이 강한 페냐 당선인은 대선 기간 내내 대만과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2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중국과 거리를 두고 대만과의 역사적 관계를 고수하겠다”고 했다. 1월 CNN 인터뷰에서는 “워싱턴(미국), 예루살렘(이스라엘), 대만의 지정학적 관계를 계속 안고 가겠다”며 “이 삼각형은 파라과이 발전을 위한 구도”라고 강조했다.

반면 알레그레 후보는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해야 한다고 외쳤다. 대두, 소고기 등 파라과이의 핵심 수출품인 주요 농산물을 광대한 중국 시장에 수출하면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는 현지 여론조사에서 줄곧 페냐 당선인을 앞섰지만 좌파 진영의 내부 분열로 단일 후보를 선출하지 못한 데다 중도층 유권자를 사로잡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 그는 우파를 ‘마피아’에 비유하며 척결 대상으로 삼자는 극단적 주장을 폈다.

● 중남미 ‘中 바람’ 일단 제동
중국과 대만 언론은 대선 기간 내내 파라과이 현지에 취재진을 파견하며 결과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온두라스와의 수교로 기세를 올린 중국은 파라과이에서도 친중 정권의 탄생을 기대하며 알레그레 후보의 당선을 적극 지지했다.

이는 파라과이의 경제 상황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대만 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파라과이와 중국의 교역액은 약 20억 달러(약 2조7000억 원)에 이른다. 대만과의 교역은 약 2억 달러로 10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이 2005∼2020년 15년간 파라과이에 투자한 돈만 1300억 달러(약 174조 원)에 달한다. 2016년 차이 총통 집권 후 파나마,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 니카라과, 온두라스 등 중남미 5개국이 줄줄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것도 ‘차이나 머니’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중국의 경제적 입김이 강한 파라과이에서 반중 후보가 대선에서 낙승함에 따라 중국의 중남미 공략에도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페냐 당선인의 승리로 가장 큰 수혜를 본 나라가 대만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새 정부가 단기간 내 경제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하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자’는 주장이 언제든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중남미 파라과이 대선#페냐#깜짝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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