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죽는 거야?”…지진 트라우마 시달리는 튀르키예 아이들

  • 뉴스1
  • 입력 2023년 2월 14일 0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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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벨렌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아이들이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띄고 있다. 2023.2.9/뉴스1
9일(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벨렌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아이들이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띄고 있다. 2023.2.9/뉴스1
“아빠, 우리 죽는 거야?”

튀르키예(터키) 남부에 사는 세르칸 타도글루(41)는 지난 6일 지진으로 집이 무너진 이후 여섯살 난 막내딸에게서 매일 이런 질문을 받고 있다.

“엄마는 어딨고, 아빠는 어딨어요? 아저씨는 저를 납치하려는 거예요?”

한 구조대원은 잔해 속에서 구조된 아이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아이의 부모는 끝내 발견되지 못했다.

13일(현지시간) AFP통신은 심리학자들과 자원 봉사자들을 인용, 지진으로 무너진 폐허 앞에서 아이들이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세계 종말’을 담은 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관들이 길가에 늘어서 있고, 구급차 사이렌은 24시간 내내 울린다. 폭삭 내려앉은 건물 잔해들 사이에서, 구조대원들은 썩은내가 나는 잔해를 들어올려 사망자들의 유해를 찾아 시체 가방에 담는다.

피해 현장의 아이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다.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슈 주민인 타도글루는 지난 6일 새벽 규모 7.8 강진이 발생하자마자 자녀 넷을 데리고 집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그가 살던 집은 이어진 약 3000번의 여진 중 하나로 무너졌다.

타도글루는 이번 지진으로 친척 10여 명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가슴아픈 현실 앞에서 강하게 버텨야 한다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 그가 중요시하는 일은 텐트촌에서 함께 지내는 아이들을 지진의 공포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는 AFP 인터뷰에서 “여진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막내가 ‘아빠, 우리 죽는 거야?’라고 계속 묻는다. 친척들이 어디 갔냐고도 묻는다. 그래서 그들의 시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아이를 껴안고 ‘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할 뿐”이라며 한탄했다.

◇“우리 엄마 어딨어요”…부모 잃은 아이들과 아이 잃은 부모들

심리학자 시한 셀릭은 이번 지진 구조 작업에 참여한 구급대원과 나눈 대화 내용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 구급대원은 잔해 속에서 구조된 아이들은 가장 먼저 실종된 제 부모에 대해 물어본다고 밝혔다.

이 구급대원은 셀릭에게 “다친 아이들이 내게 이렇게 묻더라. 엄마는 어디 있고 아빠는 어디 있냐고. 당신은 나를 납치하려 하는 거냐고”라고 회상했다.

그만큼 현재 많은 아이들이 지진으로 부모를 잃었다. 푸아트 옥타이 튀르키예 부통령은 무너진 건물 속에서 구조된 어린이 574명은 생존한 부모 없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가족에게 돌아간 아이들은 76명뿐이다.

반대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도 많다.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인 하타이의 아동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한 심리학자는 수많은 부모들이 실종된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고 밝혔다.

AFP는 하타이 지역에서 실종된 아이들을 찾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어른들도 어린이만큼이나 정신적 지원 필요하다”

정신적 충격을 입은 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튀르키예 자원봉사단체 ‘딕터스 월드와이드’ 소속 심리학자 수에다 데베치는 이번 비극의 여파로 어른들이 아이들만큼 감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데베치는 기성 세대들이 이번 지진으로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내면화하는 과정이 빨랐다고 주장했다.

텐트촌에서 일하는 데베치는 AFP에 “한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내게 강해지라고 말하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애들을 돌볼 수도 없고 밥을 먹을 수도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현재 데베치는 지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해서, 그들의 그림으로부터 심리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고 있다.

그는 “아이들과 지진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같이 그림을 그린다. 우리는 지금 상황이 아이들의 그림에 얼마나 반영되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아이들의 그림은 대부분 평범하다.

아동 권리 전문가인 에신 코만은 그 배경으로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코만은 지진으로 인해 기존 사회 지원 네트워크가 파괴되면서 아이들이 장기적인 트라우마에 위험하게 노출됐다고 우려했다. 그는 “일부 어린이들은 가족을 잃었다. 이제 그들에게 정신적 지원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 지진이 또 날까요?” 계속되는 아이들의 질문

셀마 카라슬란(52)은 지진 잔해로 가득한 카라만마라슈의 한 도로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손자 두 명과 함께 지내고 있다. 카라슬란은 손자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카라슬란은 되도록 손자들과 지진을 주제로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최대한 행복한 생각을 하도록 만들면 지진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어느 정도 희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여섯 살짜리 손주는 여전히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할머니, 지진이 또 일어날까요?”

(서울·안타키아(튀르키예)=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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