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참사 당시 경찰이 크게 실패” 인정
영국 경찰청장협의회(NPCC)와 경찰대학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공동 성명과 영상을 통해 “경찰이 힐즈버러 참사 때 크게 실패했다(profoundly failed).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경찰 실패가 비극의 주요 원인이며 이후 (피해자) 가족들 삶을 계속 황폐하게 했다”면서 “지도력이 가장 필요했을 때 경찰은 유족들을 무감각하게 대했고, 조정 및 감독 능력에서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힐즈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영국 사우스요크셔 셰필드 힐즈버러 축구장으로 수용인원을 초과한 관중이 몰려들며 97명이 압사하고 700명 넘게 다친 사고다. 뒤늦게 열린 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사람들에 이미 관람석에 있던 관객들이 밀려나면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경찰은 원정 응원을 온 훌리건(과격 팬) 난동 탓이라고 원인을 발표해 피해자들은 ‘사고 주범’이란 오명을 썼다.
하지만 사고 발생 약 9개월 뒤 진상조사단은 “경찰이 효과적인 (관중) 통제에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후 희생자 유족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재조사가 진행됐다. 2012년 경찰 고위 간부들이 사고 당일 경기장 출구를 열라고 무리하게 지시한 정황과 경찰 진술서 164건이 변조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6년 법원이 “힐즈버러 참사 책임은 경찰에 있다”고 판결하며 피해자 및 생존자의 명예가 회복됐다. 검찰은 사고 당시 경찰서장을 비롯해 경찰 간부들을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했지만 증거 부족 등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유족들은 “터무니없는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 “실책 있다면 변호하지 않겠다” 서명
NPCC와 경찰대학은 이날 56쪽 분량의 ‘힐즈버러 가족 보고서에 대한 경찰 대응’이란 보고서도 내고 경찰 윤리 규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진실을 말할 의무’가 핵심 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 유족들은 정부에 경찰관과 공직자가 진상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하도록 하는 ‘진실을 말할 의무’ 법제화를 요구했다.
앤디 마쉬 영국경찰협회 회장은 “잉글랜드와 웨일즈 모든 경찰은 참사 유족을 위한 헌장에 서명했다”며 “이 헌장에는 참사 진상조사에 솔직하게 임하고 실책이 있다면 ‘변호될 수 없는 것은 변호하려 하지 않을 것’을 인정하는 내용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윤리 규정은 다음 주 발표될 예정이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