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움 주민들 돼지처럼 살았다”…우크라군, 노획 러군 탱크타고 질주

  • 뉴시스
  • 입력 2022년 9월 14일 1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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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을 표시하는 ‘Z’가 그려진 탱크와 트럭들이 길가에 불타고 녹슨 채 방치돼 있었다. 무너진 다리에는 지뢰 매설을 경고하는 표시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 폭격으로 파괴된 주유소에는 망가진 자동차가 놓여 있었다.

이들 모두가 우크라이나군의 승리와 러시아군의 궤멸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 CNN이 13일(현지시간) 지난 10일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이지움의 모습을 전하는 내용들이다. 6개월 동안 러시아군 점령했던 곳이다.

하르키우 지역 거의 대부분과 함께 이지움도 “해방”됐다. 이지움은 러시아군의 주요 전략요충이었다. 핵심 기지인 동시에 우크라이나 동부 주둔 러시아군의 재보급 통로였다. 이지움의 표정은 우크라이나군의 대규모 탈환작전이 얼마나 신속하게 이뤄졌는지를 웅변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2일 6000평방km에 달하는 지역을 수복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에 집중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퇴각했다고 변명한다.

이지움에선 시내 치안을 확보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숨어 있는 러시아군 패잔병과 점령군 협력자들을 추적하고 있다. 이지움은 전화와 데이터 등 모든 통신수단이 끊긴 상태다. 러시아군이 모든 점령지에서 사용한 전술 때문이다.

주민들은 우크라이나군이 진주하면서 안도하는 모습이다.

이지움 시가지는 대부분 평온했고 일부 주민들이 집밖으로 나와 이동하는 우크라이나군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었으며 마주치는 우크라이나군과 악수를 청했다.

러시아군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주민들은 겁에 질려 최근 몇달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증언하길 꺼리는 모습이었다. 성을 공개하길 거부한 50대의 부부가 인터뷰에 응했다. 발레리는 우크라이나군의 승리가 “영혼을 위로한다”며 “유혈 전투 없이 해방되길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다.

멀리서 여전히 포탄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반격 전투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계속해서 우크라이나 지역을 포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서서히 이지움과 다른 탈환 지역의 안정을 확보해 일상을 회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일단의 우크라이나군이 탱크를 타고 달려왔다. 의기양양한 이들이 러시아군이 버리고간 자주포에 올랐다. 멀쩡한 이 자주포는 러시아군의 장비중 가장 위력적인 것으로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에 사용할 것이다.

자주포를 시운전한 탱크 운전병이 도시 탈환 전투가 치열했느냐고 묻자 “별로”라고 답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북동부 탈환작전에서 엄청난 무기를 노획했다. 살기 위해 허둥지둥 도망친 러시아군은 많은 무기를 멀쩡한 채로 버려두고 갔다.

이지움 탈환 전투는 러시아군 기지로 사용되던 학교에서 가장 치열했다. 러시아군은 학교 주변에 깊은 참호를 파고 모래주머니와 장갑차로 둘러쌓다.

학교 건물은 크게 부서져 있었다. 무너진 붉은 벽돌이 쌓여 있고 난방기가 불거져 있고 창문이 깨졌으며 천장의 서까래가 내려앉은 상태였다. 건물 옆에는 ‘Z’자가 그려진 붉은 트럭의 잔해가 있었다.

학교 아래쪽 도로가에는 러시아군이 방어하던 지휘소가 있었다. 사용되지 않는 공장의 지하에 있는 벙커였다. 지하실에는 학교에서 끌어다 놓은 책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책상마다 하얀색 명패가 있었다. 공군, 포병, 정보 참모 표식과 함께 “당직 사관”이라는 표식도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이 벙커 주변에 설치된 부비트랩을 수색했다. 수류탄에 철사를 연결한 부비트랩도 있었다.

지휘소 맞은 편의 어두운 콘크리트 방은 숙직실로 사용된 듯했다. 낡은 목재 문짝을 뜯어 벽돌이나 사각 깡통 위에 얹어 만든 임시 침대가 있었다. 러시아군이 급히 도주한 듯 옷가지, 치약, 종이 등이 침대와 바닥에 널려 있었다.

러시아군이 버려두고 간 다이얼식 녹색 전화를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가리키면서 “이게 러시아의 기술 수준”이라고 키득거렸다.

지상에는 러시아군이 버려두고 간 탄약이 잔득 쌓여 있었다.

러시아군의 치욕적인 퇴각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다수 올라 있다. 우크라이나군 한 장교가 러시아군 포로를 여러명 붙잡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Z’ 표식을 지우려 덧칠한 자국이 있는 러시아군 탱크와 트럭을 타고 이지움 시가지를 통과하면서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지움 주민 발레리는 이곳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처사에 화가났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없는 모든 집을 러시아군인들이 약탈했다. 그들은 돼지처럼 살았다. 돼지도 그보다는 나았을 것”이라고 했다. 발레리는 이지움에서 전투가 시작된 것이 3월4일이었다고 했다. 집 가까운 곳에 그라드 다연장 로켓 8발이 떨어져 “공포스러웠지만” 다행이 폭격에 맞지는 않았다고 했다. 바로 옆 집에 포탄이 떨어졌지만 그곳에 살던 주민은 상처하나 없이 살았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전쟁 초기 들이닥쳤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탈나치화하기 위해 침공했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알았다고 했다. “한 러시아군 포병이 ‘아버지 우리가 당신들을 나치로부터 구출했다’고 말해서 ‘나치를 보여달라’고 말했다”고 했다.

발레리는 젊은 러시아 병사들에게 러시아어로 그들이 친밀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를 망가트리고 있음을 알려주려 했다고 했다. “그들이 파괴한 집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 출신의 집이라고 알려줬다”고 했다. 그는 이곳 주민들 대부분 러시아 벨고로드 등지에 친척들이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찰병이 찾아왔길래 “이곳의 누구를 해방하려 하나”고 물었다고 했다.

지난주 러시아군이 이곳에서 퇴각하게 된 주요 요인중 하나가 러시아 병사들이 겪는 정신적 혼란과 환멸이다. 특히 하르키우 지역의 러시아군 지휘통제 체계가 무너진 것은 푸틴에게 큰 위험요인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을 계속 도망치도록 하면서 언젠가는 이들이 모스크바에 돌아가 지도자들의 단죄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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