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제재에 러시아 은행 첫 포함… 중·러 압박 본격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0일 1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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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News1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News1


북한의 잇따른 고강도 도발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을 반대하고 나선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 은행을 처음으로 대북제재 리스트에 올리면서 중러를 겨냥한 제재 강화 가능성을 압박했다. ‘세컨더리 보이콧(3자 제재)’를 의무화한 오토웜비어법를 적용해 러시아 은행을 제재하면서 이들 은행과 거래관계에 있는 러시아와 중국 은행들도 제재 가능성을 경고한 것.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이 경제제재의 핵심인 금융제재 카드를 꺼내면서 북한을 감싸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다.
●북-러 금융거래 핵심 은행 제재한 美


미 재무부와 국무부는 27일(현지시간) 독자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 극동은행(Far Eastern Bank)와 스푸트니크은행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극동은행은 미국 제재 대상인 고려항공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스푸트니크은행은 북한 조선무역은행에 금융 지원을 한데 따른 조치다.

이에 대해 아트욤 루킨 러시아 극동연방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29일 “미국이 프리모스키 지방(극동 지역) 최대 은행인 극동은행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은 중대 사건”이라며 “미국이 북한과 관련해 러시아 은행을 제재한 것은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극동은행은 북러 금융거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은행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 은행은 2007년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6자회담을 통해 북한 영변핵시설 봉인하기로 한 ‘2·13 합의’에 따라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돼 있던 북한 통치자금 2500만 달러(약 311억 원)를 북한으로 송금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미국은 2005년 BDA가 북한 불법자금 세탁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들어 제재 리스트에 올렸으며 김계관 전 북한 외무상이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로 북한 금융제재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BDA 제재를 이끌었던 후안 자라테 전 재무부 테러·금융범죄 담당 차관보는 2013년 펴낸 회고록에서 2007년 2·13 합의에 따라 극동은행을 통해 BDA 동결자금을 북한으로 송금한 것은 극동은행에 조선무역은행 계좌가 개설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선무역은행은 북한의 대외 무역 관련 거래를 총괄하는 곳이다. 자라테 전 차관보는 당시 미국이 주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였던 윌리엄 번스 현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통해 러시아 정부에 북한의 BDA 동결자금을 중개하더라도 극동은행 등 러시아 은행에 금융제재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줬다고 밝히기도 했다.
● 대북제재 실효성 논란에 금융제재 본격화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 은행을 제재한 것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을 반대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이번 제재에 2019년 제정된 ‘오토웜비어법’을 적용했다. 오토웜비어법은 북한의 불법 금융거래를 돕는 해외 금융기관에 세컨더리보이콧 적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극동은행이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로스트네프가 세운 러시아지역개발은행(VBRR)이 지분 대부분을 갖고 있는 은행인 만큼 제재 대상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재무부는 극동은행 등에 대한 제재와 관련해 “이날 지정된 기업과 거래를 하는 이는 제재에 노출될 수 있다”며 “또 이들 기업에 중요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외국 금융기관은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세컨더리 보이콧을 경고했다.

극동은행 제재로 바이든 행정부가 독자 대북제재를 새로운 단계로 확대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올 1월부터 북한 핵·탄도미사일 개발과 직접 관련된 북한 제2자연과학원과 러시아 개인·기업 등을 제재한데 이어 4월부터는 북한 해킹 조직들을 겨냥한 대대적인 제재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차원의 북한 제재에 반대하면서 제재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일자 금융제재 카드를 꺼내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브라이언 넬슨 테러·금융범죄 담당 차관은 27일 “재무부는 북한 정부에 중요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외국 금융기관들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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