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정부 첫 대북제재… 리영길 국방상 지목 “反인권 행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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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명단 올려… 중앙검찰소 등 포함
美 대북정책, 대화서 압박 선회 조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뉴스1

미국이 북한 리영길 국방상과 중앙검찰소 등에 대해 반(反)인권 행위를 자행했다며 신규 대북제재를 단행했다. 올해 1월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한 대북제재의 효력을 연장한 적은 있지만 신규 제재는 처음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조건 없는 대화’에서 압박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은 10일(현지 시간) ‘국제인권의 날’을 맞아 북한과 중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 인권 침해에 책임이 있는 개인 15명과 단체 10곳을 경제제재 리스트에 올렸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에 오른 리영길은 북한군 총참모장 출신으로 노동당 정치국 위원이자 강제수용소 운영을 책임지는 사회안전상을 지냈고 지금은 국방상을 맡고 있다.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오르면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 기업과의 거래 금지, 미국 비자 발급 제한 등의 조치가 가해진다.

재무부는 “외국인들도 북한의 불공정한 사법시스템의 피해자가 돼 왔다”면서 2016년 북한을 여행하던 중 체제 전복 혐의로 체포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이듬해 혼수상태로 미국에 송환됐지만 엿새 만에 숨졌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웜비어 사건을)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고 변호해 논란을 일으킨 지 2년 10개월 만에 웜비어 사건에 따른 새 대북제재를 단행한 것이다.

미국은 또 북한의 해외 노동자 불법 취업과 노동자 송출 알선 혐의로 ‘조선 4·26 아동영화촬영소(SEK Studio)’와 중국 및 러시아 회사들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美, 웜비어 사망 거론하며 北책임자 제재… 인권압박 강화 의지

北리영길 국방상 등 제재명단 올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인권 유린을 정조준하며 신규 대북제재 카드를 꺼내들면서 장기 교착 상태인 한반도 정세에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독재가 자유의 불길을 결코 꺼뜨릴 수 없다”고 강조한 민주주의 정상회의 폐막과 동시에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이 그동안 미국의 표적이 돼왔던 중국 미얀마 등과 함께 북한에 대한 제재를 단행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북 관여(engagement) 정책에 초점을 맞췄던 바이든 정부가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인 것. 재무부가 대북제재 리스트에 추가한 인물과 단체는 리영길 국방상과 중앙검찰소, 조선 4·26아동영화촬영소 등이다. 또 조선 4·26아동영화촬영소와 관련이 있는 중국 애니메이션 회사 3곳과 개인 1명, 러시아에서 북한 노동자 해외 불법 취업을 돕기 위해 수백 건의 학생비자를 발급해준 러시아 대학 1곳과 이 대학 교무처장도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날 재무부가 제재 리스트에 올린 10개 단체 중 6곳이 북한과 관련이 있다.

미국이 북한 인권과 관련해 대북제재를 단행한 것은 2016년부터다. 미국은 그해 7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국가원수로는 처음 인권 탄압을 이유로 제재하는 등 지도부 15명과 국무위원회, 조직지도부 등 핵심 기관 8곳을 제재 대상에 올린 뒤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북 인권 제재를 단행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미국 의회를 통과한 ‘북한 제재와 정책 강화법’에 따라 180일마다 대북 인권보고서를 내고 인권 탄압 책임자를 제재 명단에 올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대화가 본격화되자 2018년 10월 최룡해 조직지도부장 등 3명을 제재 리스트에 올릴 때까지 추가 제재에 나서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출범 후 기존 대북제재를 연장하는 선에서 이 같은 기조를 이어갔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가로 신규 대북제재를 단행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독재 정치’와 대립각을 세우고 나선 만큼 더 이상 북한에 대한 ‘로키(low key)’ 대응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이번 제재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 조치라는 풀이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해 왔지만 북한은 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북한이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부터 철회를 요구해온 5건의 대북제재 중 해외 노동자 송출 금지 조항과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 기관들까지 제재 리스트에 올리면서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또 추가 대북제재와 함께 이들과 거래하는 제3국 기관이나 개인도 제재할 수 있다는 ‘세컨더리 제재 주의’를 경고하면서 중국 러시아의 우회 지원으로 느슨해진 대북제재의 고삐를 다시 죌 수 있다는 뜻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이 직접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감을 표명한 ‘오토 웜비어 사건’을 이유로 국방상과 중앙검찰소 등을 제재한 것 역시 북한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 4·26아동영화촬영소는 김 위원장이 2014년에 직접 방문해 ‘소년장수’ 제작을 지시한 곳이다. 김 위원장은 한때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이 만화의 주인공인 ‘쇠메’로 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번 대북제재 조치에 반발해 ‘도발 카드’를 다시 꺼내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2일 군용기 추적 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공군의 코브라볼(RC-135S) 정찰기는 11일 서해상에서 장시간 비행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의 미사일 기지 동향을 추적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10일에는 북한 전역의 미사일 발사 신호를 수집할 수 있는 리벳조인트(RC-135W) 정찰기가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로 전진 배치됐다. 군 소식통은 “미국이 북한의 무력시위 재개 가능성을 주시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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