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박형준]동화 속 이야기와 다른 日공주의 결혼식

도쿄=박형준 특파원 입력 2021-10-26 03:00수정 2021-10-26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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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국민감정 고려, 결혼식 안 해
가문과 신세대 왕족 가치관 충돌 막아야
박형준 도쿄 특파원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나기 전 일본 왕실은 결혼 상대를 대부분 왕족이나 화족(華族·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등장한 귀족) 중에서 구했다. 결혼은 본인의 의사보다 양가의 혼담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화족 계급이 없어지자 근친혼 우려가 커지면서 왕실은 점차 자유연애를 허용했다.

아키히토(明仁) 상왕은 1957년 8월 일본의 휴양지 가루이자와에서 테니스 경기를 하며 평민이었던 미치코(美智子)와 교제를 시작해 2년 후 결혼했다. 나루히토(德仁) 일왕을 포함해 그들의 자녀 3명도 모두 연애를 통해 결혼 상대자를 골랐다. 여성 왕족은 평민과 결혼하면 왕적을 잃고 일반인이 되지만, 남성 왕족과 결혼한 평민은 왕적에 이름을 올리고 왕실 생활을 하게 된다. 이른바 ‘백마 탄 왕자님’과 결혼한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다.

그런 신데렐라는 행복했을까. 아닌 것 같다. 전후 첫 평민 출신이었던 미치코 상왕비는 낯선 왕실 생활로 수차례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고 1993년 쓰러져 일시적으로 말이 나오지 않는 실어증(失語症)에 걸리기도 했다. 촉망받는 외교관이었던 마사코(雅子) 왕비는 1993년 결혼 후 줄곧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범국가적 압력에 시달리면서 2003년 ‘적응장애’ 판정을 받아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마코(眞子) 공주는 일왕의 조카다. 결혼을 통해 신데렐라가 된 게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공주였다. 그런 그도 1일 ‘복잡성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상태라는 사실이 공개됐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후 겪게 되는 정신질환이 PTSD인데, 그게 장기적으로 반복되면 ‘복잡성 PTSD’가 된다. 마코 공주를 진단한 의사는 기자회견에서 “자신과 (남편이 될) 고무로 게이(小室圭)에 대한 비방, 중상이라고 느껴지는 일들이 계속된 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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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둘의 약혼 사실이 공개된 이후 고무로의 모친이 재혼을 전제로 만나던 약혼자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일본 주간지들은 비판 기사를 끊임없이 쏟아냈다. 요미우리신문이 4, 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둘의 결혼에 대해 33%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과거에는 그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이런 것들이 마코 공주에게 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일본 국민들의 비판적 정서도 이해할 만하다. 일본 왕실은 전액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올해 배정된 예산은 124억2148만 엔(약 1300억 원). 그중 5억9332억 엔은 왕족에게 지급되는 일종의 급여 성격으로 사용처를 묻지 않는다. 국민들 눈에 ‘공(公)’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라는 ‘사(私)’를 추구하는 마코 공주의 모습이 불편할 수 있다.

이런 사정으로 마코 공주는 결혼식 등 예식 없이 26일 혼인신고로 결혼 절차를 끝낸다. 왕실을 떠날 때 지급되는 품위유지비 약 16억 원도 받지 않는다. 공주의 결혼이 쉬쉬하며 진행되는 것은 전후 처음이다. 하지만 앞으로 제2, 제3의 마코 공주는 계속 나올 수 있다. 가장 유서 깊은 왕실 가문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신세대 왕족의 가치관이 충돌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마코 공주는 대부분의 왕족이 다니던 가쿠슈인대 대신 왕족으로선 처음으로 국제기독교대(ICU)에 진학했고, 거기에서 고무로를 만났다. 마코 공주를 포함해 해외 유학을 떠나는 왕족도 늘고 있다. 닫힌 궁전 성문을 열고 국민과 교감을 늘려야 동화처럼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특파원칼럼#일본#공주#결혼식#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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