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 아닌 대학살”… 바이든, 美대통령 최초 털사 방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일 1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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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여, 이것은 폭동(riot)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살(massacre)이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 ‘털사 인종 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오클라호마주 털사시(市)를 방문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사건 현장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건 생존자와 유족, 시민들을 향한 연설에서 “너무 오랫동안 이곳에서 벌어진 역사는 침묵으로 얘기돼 왔다”며 “어두움이 많은 것을 숨길 수는 있지만, 아무것도 지워버리지는 못 한다”고 말했다.

털사 인종 대학살은 1921년 오클라호마주 털사시의 그린우드 지역에서 최대 300명의 흑인이 백인들에 무참히 살해당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해 5월 30일 이곳에서 구두닦이 일을 하던 19세 흑인 남성 딕 롤런드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중심을 잃고 안내원 역할을 하던 17세 백인 소녀 새라 페이지와 몸이 부딪히면서 사태는 촉발됐다.

바이든 대통령 연설 듣는 털사 대학살 최고령 생존자.
바이든 대통령 연설 듣는 털사 대학살 최고령 생존자.
롤런드는 이후 폭행 혐의로 기소됐고 이 문제를 놓고 백인과 흑인들이 집단으로 충돌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백인들은 흑인들이 살고 있는 그린우드 지역으로 몰려가 이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방화, 약탈을 했다. 당시 그린우드 지역은 부유하거나 여유 있는 흑인들이 모여 살아 ‘블랙 월스트리트’라고도 불렸는데, 여기에 평소 시기심을 가졌던 백인들이 이 사건을 구실로 폭동을 저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사건의 가해자나 책임자에 대해 아무런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배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백인이 주류인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무장한 흑인과 백인의 충돌 정도로 묘사했고, 그 후 학교 교육이나 역사책 등에서도 언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잊혀진 사건’이 됐다. ‘폭동’으로 불리던 이 사건이 ‘대학살’로 공식 명칭이 바뀐 것도 오클라호마주 조사위원회의 활동 이후로 비교적 최근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점을 꼬집으면서 “역사가 침묵한다고 해서, 그것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어떤 부당함은 너무 악랄하고 끔찍하며 비통하다. 이는 아무리 노력한들 땅에 묻을 수 없다. 오직 진실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털사 그린우드 문화센터 방문.
바이든 대통령, 털사 그린우드 문화센터 방문.
사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의 재평가는 요원한 상태다. ‘털사 학살 100주기 위원회’는 최근 이 사건의 생존자 3명에게 각각 10만 달러를 지급하고 200만 달러의 배상기금을 두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생존자 측은 배상 규모에 이견을 보였다. 이로 인해 100주기 기념행사로 추진됐던 추모 콘서트가 취소되는 등 파열음이 일었다.

얼마 전에는 케빈 스티트 오클라호마 주지사가 ‘학생들이 자신의 인종과 성별로 인해 불편함과 죄의식 등을 느낄 수 있는 수업’을 제한하는 법안에 서명한 게 논란이 됐다. 이 같은 조치가 털사 대학살 사건의 실체에 대해 학생들이 제대로 배울 수 없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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