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법 모범’이라던 베를린, 임차인 되레 신음

황재성 기자 입력 2021-05-17 11:51수정 2021-05-1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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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정부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추진하는 ‘임대차 3법’의 마지막 구슬인 ‘임대차 신고제’가 다음달 21일부터 시행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임대차 3법’의 입법을 강행하며 모범사례로 내세웠던 독일 베를린시가 정작 무리한 임차인 보호정책에 신음 중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한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폭격이고 그 다음이 임대료 규제’라는 경제학 교과서의 가르침이 예나 지금이나, 독일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 독일 베를린시 세입자, 이면계약과 매물감소로 신음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17일 발행한 ‘건설동향브리핑 806호’에 게재된 보고서 ‘주택임대료 동결…베를린 시장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베를린 지방정부는 지난해 2월부터 5년 동안 임대료 동결을 골자로 하는 ‘임대료 인상 제한법’을 시행했다.

이 법에 따라 베를린시는 지난해 2월 독일의 16개 주정부 중 유일하게 월셋집의 90%에 해당하는 150만 임대인이 월세를 2019년 6월 수준으로 5년간 동결해야 했다. 작년 11월 23일부터 시행된 2단계는 월세가 상한보다 20% 이상 높은 월셋집을 금지하고, 상한보다 더 많은 월세를 받고 있는 임대인들은 월세를 내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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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베를린시 임대료는 지난 1년 간 약 7.8%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기존 임차인은 임대료 인하 혜택을 누린 셈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들이 이어졌다. 우선 법적 상한을 넘어 신고 되지 않은 추가 임대료, 즉 ‘숨겨진 임대료(shadow rent)’를 포함한 거래들이 나타난 것이다. 실제 세입자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을 수 있다는 뜻이다. 주변 지역 월세가 급등하는 풍선효과도 발생했다.

여기에 임대 매물이 함께 감소하면서 신규 임차인의 시장 진입은 더욱 어려워졌다. 임대물건을 거둬들인 집주인들이 신규 임대계약을 맺는 대신 집을 판매하거나 비워두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 결과 매물이 임대물건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을 정도다.

● 국내도 임대차 3법 강행에 따른 부작용 잇따라
‘임대차 3법’을 몰아붙이고 있는 국내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계약갱신청구권(시행시기·2020년 9월29일)’과 ‘전월세 상한제(2020년 10월31일)’가 시행되기 시작했고, 임대차신고제가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기대와 달리 전세금 상승세는 지속되고 있다.

13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금은 2019년 6월 셋째 주부터 이달 둘째 주(10일 조사 기준)까지 100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서울 전세금이 2014년 6월부터 192주 연속 상승한 이후 가장 길다.

이면계약으로 실제 부담이 크게 줄지 않는 가운데 향후 계약 시 가격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서울세입자협회 박동수 대표는 지난달 참여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에 따라 5%의 임대료인상률 상한제 적용을 받은 갱신계약과 신규로 체결된 계약 사이 보증금 액수 차이가 상당히 벌어져 언론에서 언급하는 이중가격이 실제로 형성되고 있다”며 “(보증금 격차가) 전체 전세금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 증액만으로 갱신계약을 한 임대인이 2년 후 보상심리에서 훨씬 높은 보증금에 재계약을 하거나 기존 임차인을 퇴거시키고 신규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도 늘어나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임대료 증액 및 계약갱신 관련 조정 건수는 155건으로 2019년(48건)의 3.2배 수준이다. 임대차법 관련 상담 건수는 지난해 1만1589건으로 전년(4696건)의 2배를 넘었다.

● 공공 주도 임대주택 공급으로는 한계
건산연은 이와 관련해 “독일과 국내 임대차 정책의 공통점은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면서도 임대주택 공급에 대한 고민이 적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차인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료 인상 조치가 임대인들의 공급 축소 유인이 될 수 있고, 이로 인한 피해를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이중계약과 매물감소 등과 같은 임대차 시장 기형화는 결국 약자인 임차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국내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공 중심의 임대주택 공급은 그 양에 한계가 있다”며 “주택 상품 및 제도, 제도를 추진하는 과정에 연관된 사업자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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