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軍, 세뇌-감시속 사회와 단절… 살인명령 기꺼이 수행”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NYT, 전현직 장교 심층 인터뷰
“국가의 수호자” 끊임없이 사상교육… 인터넷 활동 등 모든 사생활 감시
군인과 그 가족의 결혼까지 통제… “탈영하면 가족까지 잡아 고문할 것
세상과 단절된 군인에겐 軍이 전부… 국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시민 학살”

지난달 1일 군부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이 27일 ‘미얀마군(軍)의 날’을 맞아 수도 네피도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사열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곤봉과 총을 든 무장 군인들이 25일 중부 타운지 지역의 한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순찰하는 모습. 네피도=AP 뉴시스
지난달 1일 군부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이 27일 ‘미얀마군(軍)의 날’을 맞아 수도 네피도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사열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곤봉과 총을 든 무장 군인들이 25일 중부 타운지 지역의 한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순찰하는 모습. 네피도=AP 뉴시스
“군(軍)은 그들의 ‘유일한 세상’이다. 누구든 군의 명령에 불복하면 범죄자라고 생각한다.”

미얀마에서는 지난달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이달 28일까지 시민 460여 명이 숨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군부의 폭력 진압으로 인한 사망자가 늘고 있지만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군부를 압박할 만한 실효성 있는 조치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얀마군 내부에서 이뤄지는 사상 교육과 감시, 시민들과 단절돼 살아가는 생활방식 때문에 군인들이 상부의 ‘살인 명령’까지 기꺼이 수행한다고 분석했다.

○ 철저한 세뇌 교육과 감시

유혈 진압에 앞장선 미얀마 77경보병사단의 대장이었던 툰 묘 아웅 전 미얀마군 대위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군에 들어가면 ‘우리는 국가와 종교의 수호자’라는 사상 교육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밝혔다. 약 50만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얀마군은 지난 60여 년간 철저한 내부 교육 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NYT는 이들을 ‘살인을 위해 길러진 로봇 병사’로 묘사했다. 아웅 전 대위는 지난달 군에서 몰래 빠져나와 현재 미얀마 모처에 은신 중이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양곤에서 시민들이 군에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탈영했다”고 NYT에 말했다.

미얀마군은 일반 시민들과 단절된 채 살아가며 각종 특혜를 누리고 시민 위에 군이 군림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외신은 전했다. 군 내부에서 서로를 감시하는 분위기도 살벌하다고 NYT는 전했다. 상급자는 하급자의 인터넷 활동 등 모든 사생활을 감시하고, 군인과 그 가족들은 군 주거단지에 거주해야 한다.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는 ‘군부의 허가 없이는 15분 이상 주거단지를 떠날 수 없다’는 명령도 내려왔다.

이에 대해 한 탈영 장교는 “현대판 노예”라고 말했다. 다른 현역 군의관은 “군을 그만두고 싶지만 감옥에 가게 될 것이 뻔하다. 내가 탈영하면 가족을 잡아다 고문할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군부는 군인과 그 가족들의 결혼도 통제한다. 미얀마군에서는 전쟁에서 군인 남편을 잃은 여성이 미혼의 군인과 결혼하는 것이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될 사람을 선택할 수 없고 군부가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아웅 전 대위는 “대부분의 군인들은 세상과 단절됐고, 군은 그들의 전부”라며 “그들은 평생 민주주의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시위대 진압 임무를 맡고 도시에 투입된 군인들에게는 “도시 곳곳, 거리와 골목 곳곳에 적이 도사리고 있다”는 식의 선전 선동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군인들의 세계관 때문에 대부분의 군인들이 민간인 살해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27일 미얀마군의 날 기념식에서 “모든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라”고 말했다. 한 군인은 “군은 외국의 개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한다는 생각으로 시민들을 학살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규탄 성명만으로는 군부 압박 못해

28일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와 앨리스 와이리무 은데리투 유엔 대량학살방지 특별자문관은 공동성명에서 “미얀마군의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공격을 규탄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규탄의 목소리만 내는 방식의 대응은 군부를 압박하지 못하고 있다. 무력을 동원하지 않은 가장 적극적인 대응 방식인 경제제재 역시 유엔 안보리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미국 영국 등 일부 국가들이 군부와 관련된 기업에 독자 제재를 하는 형태여서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미얀마는 외부에 폐쇄적인 경제 구조를 갖고 있고 내수 위주의 기업들이 대부분이라 제재의 효과가 크지 않다.

군부의 학살을 멈추기 위해서는 유엔군 투입이나 긴급 정상회의 개최 같은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유엔의 보호책임(R2P) 조항을 발동해 반인륜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미얀마 군부에 무력 사용이나 가혹한 제재 등의 강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얀마 사태가 심각해지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30일 긴급 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29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는 시민들과 연대하려는 반군의 거주지역에 전투기 폭격도 시작했다. 미얀마 남부 카렌주에서 주민들이 폭격을 피해 인근 산속 동굴로 대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뉴욕=유재동 특파원
#미얀마#장교 인터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