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경관 솜방망이 처벌에 소수인종 간 갈등 ‘시한폭탄’

이윤태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입력 2020-06-06 03:00수정 2020-06-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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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끊이지 않는 美 인종갈등 왜? 미국이 인종 갈등이란 고질병을 치유하지 못해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위조지폐 사용 혐의로 백인 경찰 데릭 쇼빈(44)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미네소타주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46) 사건 이후 미국의 분열이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까지 배출했는데도 미국 내 인종차별 범죄와 이에 항의하는 유혈 시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경제 격차 확대 △소셜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경찰의 가혹행위 급속 전파 △솜방망이 처벌 △흑인 vs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 내 갈등 등이 거론된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언제든 비슷한 사태가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비무장 흑인 죽여도 무죄
통계사이트 데이터USA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 경찰 약 80만 명 중 백인(히스패닉 포함)은 77.1%, 흑인이 13.3%다. 공무원 면책권과 정당방위법 등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을 죽인 경관이 형사 처벌을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애초에 기소조차 되지 않는 사례가 허다하다.

또 상당수 경관은 배심원단 전원 혹은 대다수가 백인인 상황에서 재판을 받아 재판의 공정성 논란이 뒤따른다. 사망 경위 또한 가해자의 관점에서만 서술될 때가 많아 피해자가 경찰에게 정말 신변 위협을 가했고 그래서 정당방위를 행사했는지 불투명하다. 일부 경관이 공권력을 남용해 고의적으로 살해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 씨의 사망으로 촉발된 미국의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10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4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 워싱턴스퀘어 공원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흑인 남성이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는 문구가 적힌 성조기를 들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1979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아서 맥더피(당시 33세)를 구타해 두개골 골절로 숨지게 한 백인 경찰 4명, 1999년 아마두 디알로(23세)가 지갑을 꺼내려 하자 총으로 오인해 사살한 뉴욕 경찰 4명, 2001년 티머시 토머스(19세)를 경범죄로 체포하려다 총격을 가한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백인 경찰 스티븐 로치, 2006년 클럽에서 파티를 즐기던 숀 벨(23세) 일행에게 50발의 실탄을 발사한 뉴욕 경찰 3명은 모두 무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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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이드 씨 사망 같은 전국적 인종차별 규탄 시위를 촉발한 사건은 2014년 8월 중부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일어났다. 백인 경관 대런 윌슨은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치려던 비무장 상태의 18세 소년 마이클 브라운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번 플로이드 씨 부검에도 참여한 뉴욕의 베테랑 법의학자 마이클 베이든 박사가 유족 요청에 퍼거슨까지 날아와 당국과 별도로 부검을 했다. 그 결과 시신에서 6발의 총탄이 발견됐지만 탄약 가루의 흔적은 없었다. “몸싸움을 벌이다 근거리에서 총을 쐈다”는 윌슨 측 주장과 달리 그가 비무장 상태인 10대 소년을 멀리서 조준 사격했을 가능성이 드러난 셈이다.

그런데도 윌슨 경관은 3개월 후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비무장 10대 소년의 몸에 6발의 총알을 박아 넣은 경찰이 기소조차 되지 않자 흑인 사회가 격분했다. 퍼거슨에서는 폭동이 일어나 한 달 넘게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주방위군이 투입됐다. 미 전역에서도 동조 시위가 발생했다.
○ 흑인에 집중된 교통단속이 비극으로 이어져
교통단속 과정에서 상당수 희생자가 나타났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미 경찰은 특정 차량이 신호를 지키지 않거나 등이 깨져 있을 때 다른 사고 및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감안해 해당 차를 세우고 추가 수색에 나설 수 있다. 이를 ‘겉치레 정지 명령(pretextual traffic stop)’이라고 한다.

더 심각한 범죄를 사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도입됐지만 취지와 달리 인종차별 도구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대상자가 대부분 흑인인 탓이다. 백인 운전자라면 사소한 주의만 주고 넘어갈 신호 위반 등을 흑인 운전자에게 깐깐하게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벌금을 부과하고 강압을 행사하는 경찰이 적지 않다. 교통단속이 유색인종을 상대로 한 일종의 표적수사가 된 셈이다.

교통단속 중 경관과 언쟁 및 몸싸움을 벌인 후 총에 맞아 숨진 월터 스콧(당시 50세), 새뮤얼 듀보스(43세), 필랜도 캐스틸(32세) 등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피해자들은 모두 운전 중 경찰과 맞닥뜨렸고 거칠게 “차에서 내리라”는 경찰과 옥신각신하다 사살됐다. 캐스틸의 차를 세운 경관은 당초 후미등 파손을 이유로 들었지만 캐스틸이 강도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하다고 여겨 그와 실랑이를 벌였다. 캐스틸이 총을 꺼내려 한다는 이유로 그를 쐈다.

‘불심검문(stop and frisk)’ 정책을 도입했던 뉴욕의 사례에서도 유색인종 표적수사 의혹이 상당 부분 근거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인터넷 매체 복스에 따르면 2004∼2012년 뉴욕 인구 중 흑인 비율은 23%, 백인은 33%였다. 하지만 불심검문을 당한 사람 중 흑인 비율은 52%, 백인은 10%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불심검문을 당한 사람 중 백인과 흑인의 무기 소지 비율은 오히려 백인이 더 높았다. 백인의 1.4%가 무기와 밀수품을 보유했지만 흑인은 1.0%였다.

경찰의 업무 능력을 검문 횟수, 교통위반 딱지 발행량 등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유색인종에 대한 표적수사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자 백인 동네에서는 주민 반발을 우려해 딱지 하나 떼는 것도 어려워하는 경찰들이 유색인종에게는 과도한 처벌을 일삼는다는 의미다.
○ 흑인 vs 히스패닉 갈등도 심각
미 인종 구성 변화는 인종 갈등의 전선(戰線)을 확대하고 있다. 흑백 갈등의 상흔이 여전한 상황에서 ‘흑인 대 히스패닉’ ‘흑인 대 아시안’ 같은 새 갈등이 급부상했다. 특히 기존 소수인종의 핵심이던 흑인과 ‘인구’를 앞세운 히스패닉이 격렬히 대립하고 있다.

라틴계가 많은 남부 텍사스주의 히스패닉 경관 브라이언 엔시니아는 2015년 7월 차선 변경 문제로 흑인 여성 운전자 샌드라 블랜드(당시 28세)와 언쟁을 벌였다. 그는 블랜드에게 ‘담배를 끄라’고 했고 블랜드는 ‘내 차에서 피우는데 왜 꺼야 하느냐’며 맞섰다. 엔시니아는 테이저건을 사용해 블랜드를 끌어냈다. 블랜드가 ‘간질 환자여서 발작 위험이 있다’고 외쳤는데도 얼굴을 땅에 뭉갰다. 구치소로 옮겨진 블랜드는 사흘 후 자살했다.

재판 과정에서 엔시니아가 1년간 무려 1600장의 딱지를 발급하는 등 상습적으로 딱지를 남발했음이 드러났다. 엔시니아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1년 후 캐스틸을 사살한 제로니모 야네스 경관도 히스패닉이었다.

양측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2012년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쏴 죽인 백인―히스패닉 혼혈 자경단원 조지 지머먼이다. 독일계 백인 아버지와 페루인 어머니를 둔 지머먼의 외모는 히스패닉에 가깝다. 플로리다주 소도시 샌퍼드의 주택가를 순찰하던 그는 낯선 흑인 소년을 보자 “나쁜 짓을 할 것 같다”며 911에 신고했다. 당시 경찰은 ‘기다리라’고 했지만 그는 마틴을 뒤쫓았고 언쟁 후 사살했다. 지머먼은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지만 백인 일색인 배심원단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0년대 이전 미국의 최다 소수인종은 단연 흑인이었다. 이 자리를 중남미에서 몰려온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대체했다. 2000년 미 3억 명 인구 중 12.3%를 차지하던 흑인은 2019년 13.4%로 1.1%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히스패닉은 12.5%에서 18.3%로 5.8%포인트 증가했다. 2060년에는 히스패닉 비율이 31%로 흑인(15%)의 배를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가톨릭 영향으로 다산(多産) 경향이 있는 히스패닉들은 저임금 일자리 등을 놓고 흑인과 충돌하고 있다.

로드니 킹 사건이 촉발한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에서 보듯 흑인과 아시안의 갈등도 심각하다. 일각에서는 킹 사건과 이번 플로이드 사망 시위 때 자체 방어에 나선 한인들을 뜻하는 ‘루프 코리안(Roof Korean)’이라는 말을 두고 ‘백인이 교묘하게 유색인종 간 갈등으로 비틀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 양극화 심한 곳에서 폭발
고질적인 빈부 격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으로 경제적 한계에 내몰린 흑인들의 분노 또한 하늘을 찌른다. 플로이드가 숨진 미니애폴리스, 브라운이 사망한 퍼거슨 등은 모두 미국 내에서도 양극화, 소득·교육의 흑백 격차가 큰 곳으로 유명하다. 언제든 폭발할 위험이 있는 화약고였던 셈이다.

미니애폴리스는 붙어있는 미네소타 주도(州都) 세인트폴과 ‘쌍둥이 도시’로 불린다.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이 지역 흑인 가구의 연소득 중간 값은 3만8178달러로 백인 가구(8만4459달러)의 45.2%에 불과했다. 위스콘신주 밀워키를 제외하면 미 주요 도시 중 흑백 간 소득 격차가 가장 크다. 흑인 빈곤 가구(연 소득 2만3492달러 이하) 비율은 25.4%로 백인(5.9%)의 4배 이상이다. 이 지역 백인의 4분의 3은 집을 소유했지만 흑인은 4분의 1만이 집이 있다. 흑인 실업률 역시 백인보다 3배 높았다. 2019년 미네소타주의 인종 간 고교 졸업률 격차는 미 50개주 중 1위였다.

6년 전 대규모 폭동이 발생한 퍼거슨은 미주리주 최대 도시 세인트루이스에 이웃한 인구 2만 명의 작은 도시다. 인구 중 약 67%가 흑인이며 2017년 빈곤층 비율은 22.5%로 미 평균(13.1%)을 한참 웃돈다. 빈곤층 중 흑인 비율도 75.2%에 달한다.

즉,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이 흑백 차별 그 자체에서 비롯됐다면 21세기의 갈등은 경제적 차별에 기인한 경향이 짙다. 불평등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와중에 백인 경찰의 잔혹행위가 이어지자 길거리로 나온 셈이다. 코로나19 피해가 흑인 등 유색인종에게 집중됐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피해자들이 처참하게 숨지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시위대의 분노를 가중시킨다. 플로이드 사건 역시 그가 8분 46초간 쇼빈 경관에게 잔혹하게 제압당하는 동영상이 퍼지면서 전 세계로 널리 알려졌다. 캐스틸 사건은 당시 차에 동승했던 캐스틸의 애인이 촬영해 세상에 알려졌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최근 플로이드 사망을 조롱하는 소위 ‘플로이드 챌린지’ 영상까지 유포해 공분을 사고 있다.
○ 경찰관도 위협 느끼지만…
총기 소지가 합법화돼 있는 미국에서 경찰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07∼2018년 연평균 105명의 경찰이 근무 중 목숨을 잃었다. 경찰관들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강경 진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찰의 과잉 대응은 문제라는 지적이 거세다. 이를 막기 위해 마이클 브라운 사건 이후 경찰은 대부분 몸에 카메라, 소위 ‘보디캠’을 차고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도 경찰의 잔혹행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자 공무원 면책권, 정당방위법 등을 대폭 손질하고 경찰의 징계 기록을 감추는 비밀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단체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뉴욕지부는 “연방정부가 ‘비무장, 무저항, 비폭력’ 시민을 죽인 경찰관을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나섰다. 일부 유가족들은 경찰의 징계 기록을 감추는 경찰비밀법 폐지를 주장한다. 경찰의 총격으로 자식을 잃은 발레리 벨 씨는 CBS방송에 “과거에 한 일이 현재의 살인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경찰관의 과거 직권남용 기록을 공개하라”고 외쳤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경찰의 직권남용을 독립적인 외부 기관이 조사하고, 연방정부가 각 주 정부에 직권남용의 새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 역시 경찰의 징계 기록 공개를 찬성했다. 쿠오모 지사는 “미국의 인종차별은 만성적이고 고질적이고 제도화했다. 우리 모두 집단 위선(collective hypocrisy)에 갇혔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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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종차별 반대시위#인종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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