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무부, 자금세탁 계기로 北中 동시 겨냥…별도 행동 나선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9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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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의 자금줄로 알려진 국영 조선무역은행(FTB) 평양 본부는 2014년 8월 중국 선양의 위장회사에서 일하는 김동철에게 암호 지령을 보냈다. 미 상무부의 제재 대상인 중국 국영 판다인터내셔널정보통신의 중국 계좌에 12만 달러(약 1억4800만 원)를 입금하라는 지시였다. 이튿날 김동철은 FTB의 위장회사인 밍정국제무역을 통해 11만9782달러를 송금했다. 이 거래는 미국 은행을 거쳐 결제됐다.

미 법무부가 28일(현지 시간) 공개한 북한·중국인 33명에 대한 50쪽 분량의 공소장에는 김동철 등의 돈세탁 및 불법거래 내역이 30쪽에 걸쳐 빼곡히 기재됐다. 또 미중 갈등의 뇌관으로 떠오른 중국 통신기업 화웨이 및 ZTE로 추정되는 중국 기업 2곳, 중국은행 5개도 언급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들은 중국 은행에 허위 정보를 제공하고, 판다의 북한 내 이동통신망 구축 작업에 대한 대가를 달러로 결제한 혐의로 기소됐다”고 전했다.

이번에 기소된 인사들은 모두 미국 밖에 체류하고 있어 이들을 송환해 미국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 재무부는 이미 2013년 FTB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고, 2017년과 2018년에는 이 은행 관계자와 위장회사 등에 대해 독자 제재를 했다.

그런데도 법무부가 별도로 행동에 나선 것은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최대한 압박하려는 미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협상 대신 핵무력 강화를 주장하는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등을 놓고 격렬히 대립하고 있는 중국에도 대북 제재를 이행하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의미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는 피고인들을 체포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도 적성국 정부를 막기 위해 외국인들을 종종 기소한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이들을 추방하거나 미국에 인도하도록 다른 국가들을 압박하고 범죄에 관여한 은행·기업을 독자제재 대상에 올릴 수 있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2015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북한의 불법거래에 관여된 6300만 달러 규모의 자산을 동결하거나 압류했다.

뉴욕=박용 특파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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