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코로나 사망자, 伊 넘어설듯… ‘저비용 국영의료’ 허점 드러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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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3만명 육박, 치사율 15.2%… 유럽 최대 피해국으로 기록 유력
99% 세금으로 운영 NHS 체계, 한정된 재원에 의료진-장비 부족
정부 늦은 봉쇄조치도 피해 키워

영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3만 명에 육박하면서 조만간 이탈리아를 제치고 유럽 최대 피해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진 및 장비 부족을 야기한 공공의료 체계와 보리스 존슨 총리 등 지도부의 오판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국제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영국의 확진자와 사망자는 각각 18만6599명, 2만8446명이다. 확진자는 세계에서 4번째로 많고, 사망자는 세 번째로 많다. 특히 사망자 증가 속도가 빨라 조만간 이탈리아(2만8884명)를 앞설 가능성이 높다. 확진자 대비 사망자를 뜻하는 치사율은 15.2%로, 이탈리아(13.7%)를 넘어섰다.

사망자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영국 정부가 1948년 도입한 국민보건서비스(NHS) 위주의 공공의료 체계가 꼽힌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상의료를 실시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의료계 전반의 효율성과 의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인재의 해외 유출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NHS는 99% 세금으로 운영된다. 미성년, 고령자, 저소득층은 완전 무료이며 일반인은 1% 안팎의 부담금을 낸다. 이로 인해 NHS의 누적 부채만 134억 파운드(약 21조 원)에 달한다. 한정된 재원 탓에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의료체계의 취약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가디언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영국 의사와 간호사는 각각 1만2000명, 4만2000명이 부족했다. 필수 의사, 간호사 인력의 각각 9%, 12%에 달한다.

영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8명으로 독일·스위스(4.3명), 이탈리아(4.0명) 스페인(3.9명) 프랑스(3.2명)보다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4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구 100만 명당 병원 수는 29.0개로 역시 독일(37.3개), 프랑스(45.5개)보다 적다.


영국 병원은 대부분 국영이어서 의사도 사실상 공무원이다. 정우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사들이 대부분 월급쟁이에 수입도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유능한 인력이 모두 해외로 나간다”고 진단했다. 의료정보사이트 메드스케이프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의사의 평균 연봉은 13만8000달러(약 1억7000만 원)로 미국(31만3000달러), 독일(16만3000달러)보다 훨씬 적었다. 의사 직군에 대한 노후연금 세율도 높은 편이어서 은퇴를 미루고 늦은 나이까지 일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이에 2016∼2018년에만 조기 은퇴를 택한 의사가 3500명에 달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부족한 인력을 외국 의료진으로 채우지만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NHS 인력 중 13.1%가 외국인이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존슨 총리를 돌본 간호사도 포르투갈과 뉴질랜드 출신이었다. 특히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과정에서 전체 간호 인력의 13%인 EU 출신 직원 5000여 명이 NHS를 떠났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국가 전체 보건비용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00년 국내총생산(GDP)의 4%였던 의료비 비중은 2018년 7%대로 늘었다. 설립 초 140억 파운드였던 NHS 지출 규모도 2018년 1529억 파운드(약 233조 원)로 1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존슨 내각은 NHS 체계를 과신하면서 초동 대처 기회를 놓쳤다. 3월 초 이탈리아 등이 전국 봉쇄령을 단행할 때 ‘전체 인구의 일정 비율 이상이 면역력을 가지면 코로나19를 이길 수 있다’는 소위 ‘집단 면역’을 추진해 귀중한 시간을 잃었다. 영국은 3월 23일에야 봉쇄 조치를 내렸지만 이미 늦은 조치였다. 존슨 총리, 맷 행콕 보건장관 등이 잇따라 코로나19에 감염돼 국제적 망신까지 샀다.

몇 년 전부터 NHS 개혁은 영국 사회의 화두였다. 영국 보건의료 싱크탱크인 왕립재단은 “NHS 부실화로 2020년 25만 명, 2030년 35만 명의 의료진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손명세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는 “공공 부문에서 대비하지 못한 의료 상황은 민간이 맡는 등 이원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이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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