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 빚더미’ 스리랑카 내분… 친중행보 필리핀은 美에 경고받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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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무역협상 신경전]美中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동남아국가

“무지개가 뜬 뒤 더 많은 비가 내린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자매지 닛케이아시안리뷰(NAR)는 4일(현지 시간) 중국과 필리핀의 최근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전통적인 미국 우방이던 필리핀은 최근 눈에 띄게 ‘친중탈미(親中脫美)’ 행보를 보여 왔다.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경제 지원을 기대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중국에 러브콜을 보냈다. 그 결실로 지난달 20일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정상으로서는 13년 만에 필리핀을 방문했다. 양국은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자원개발에 협력한다는 양해각서를 포함해 무역, 투자, 인프라개발 등 29개 분야 협약에 서명했다. 시 주석은 필리핀 언론 기고문을 통해 “(양국 관계는) 비가 그친 뒤 무지개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필리핀 내에서는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NAR는 “최근 필리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명 중 4명은 ‘남중국해 문제에서 중국에 더 강경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친미’냐 ‘친중’이냐, 아니면 ‘양다리’냐. G2의 패권 싸움에 끼여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이 깊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달 15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폐막연설에서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이냐 미국이냐,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런 일이 곧 닥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동남아 국가들의 갈등 배경에는 최근 중국의 영향력 확장이 있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동남아 국가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경제영토 확장 프로젝트)’ 사업 등을 펼치며 우군을 늘려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과다한 부채 등으로 부작용이 커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대일로 부채국인 스리랑카에서는 최근 ‘친중파’인 신임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 임명을 두고 극심한 정국 혼란을 겪는 중이다. 2005년부터 10년간 스리랑카 대통령을 지낸 라자팍사는 재임기간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해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유치했지만 스리랑카는 최근 빚을 갚지 못해 핵심 인프라인 함반토타항을 중국에 99년간 임대해야 했다.

동남아 국가들과 오랫동안 우방 관계를 유지해 오던 미국은 친중 기미를 보이는 국가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는 지난달 28일 필리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필리핀의 유일한 동맹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은 전략적 요충지를 중국에 뺏기지 않기 위해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올 1월과 10월 두 차례 베트남을 방문했다. 3월엔 베트남전 종전 43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항공모함이 필리핀을 거쳐 베트남 중부 다낭에 기항한 바 있다.

상당수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로 불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태국은 미국과의 안보동맹 관계를 굳건히 유지하면서도 최근 중국으로부터 수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구입했고 10월 말엔 중국과 함께 해상 연합 군사훈련도 했다. 친중 성향이 강했던 말레이시아는 최근 일부 일대일로 사업을 중단시켰고, 인도네시아 역시 중국과 거리 두기를 하는 모양새다. 스리 물랴니 인드라와티 인도네시아 재정부 장관은 3일 “우리는 90일간의 무역전쟁 휴전기간 동안 앞으로 발생할 위험을 예측하고 동시에 이득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가인 comedy9@donga.com·전채은 기자
#일대일로 빚더미#스리랑카 내분#친중행보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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