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 대입 소수계 우대 폐지 시동… 흔들리는 ‘인종 용광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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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다양성 권고’ 정책 철회… 부시정부의 ‘인종중립’으로 U턴
“백인-아시아계 역차별 안돼” 주장… “또다른 백인 우월주의” 비판도
보수色 대법도 위헌 결정 가능성

“학생들을 초등학교, 중고교에 배정할 때 ‘인종 중립적(race neutral)’ 수단을 활용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지난달 29일 미국 교육부 홈페이지에 학생 선발 과정의 ‘소수계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제한한 조지 W 부시 행정부 지침이 갑자기 등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폐지한 부시 행정부 지침이 다시 게재됐다는 것은 교육부의 스탠스가 바뀐 것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57년간 이어온 미국 대학의 소수계 우대정책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보수 성향이 짙어진 미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 소수계 우대정책, ‘부시 시대’로 유턴

3일 NY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학생들의 다양성 요소로 인종을 고려하도록 권고한 오바마 행정부의 지침을 폐기하고 교육감과 대학 총장들에게 ‘인종 중립적인’ 입학 기준을 채택하도록 장려할 계획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과 2016년 대학 당국이 입학사정 과정에서 학생 다양성을 위해 인종적 요소를 고려할 것을 권고하는 지침을 내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를 뒤집는 새 지침이나 법안을 내놓지는 않는 대신 오바마 행정부가 폐기한 부시 행정부 지침을 다시 게재하는 방식으로 연방정부의 공식 견해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 방침은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학생 선발 과정에서 소수계 우대정책을 유지해 온 대학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법무부의 조사나 소송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 지원금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 “백인, 아시아계 역차별” vs “또 다른 백인 우월주의” 논란

소수계 우대정책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입시나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인종, 신념, 국적 등에 따른 차별을 막기 위해 행정명령으로 도입한 제도다. 하지만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소수계 우대정책의 큰 틀은 살아남았지만 ‘소수계 할당제’ 등은 위헌 판결을 받았다.

여기에다 아시아계 학생 역차별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사안이 더 복잡해졌다. 보수계 시민단체인 기회균등센터 로저 클레그 회장은 “(시험 성적이 우수한) 아시아계나 다른 인종도 백인 학생들처럼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며 “미국의 인구 구조가 바뀌면서 이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백인 우월주의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새뮤얼 바겐스토스 미시간대 교수는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훼손하기 위한 보수층의 광범위한 시도의 일환”이라며 “레이건 행정부가 시도해 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뉴욕시의 경우 시 당국이 아시아계 학생 비중이 큰 특수목적고의 입학시험을 폐지하고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 선발 비율을 높이는 새로운 선발제도 도입을 추진하면서 아시아계 시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 57년 만에 위헌 결정 날 수도

소수계 우대정책 공방은 다시 법정으로 옮아갈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아시아계 학생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이 소수계 우대정책을 펼쳐온 하버드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 소송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연방대법원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 온 중도보수 성향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82)이 이달 말 은퇴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임명될 것으로 점쳐진다. 보수색이 짙어진 대법원에서 소수계 우대정책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수계 우대 철학을 부정하는 판결이 나오면 미국 대학 입학전형의 대대적인 변화와 미국 사회의 능력주의, 인종 간 평등 문제에 대한 거센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트럼프#인종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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